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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우리아이들

키가 잘 자라게 하는 식품

키가 잘 자라게 하는 식품

박태균 식품전문기자의 ‘푸드 백신’

 

루저 파동·‘키 컸으면’(방송사 개그 프로 코너 타이틀)·키 높이 신발….
하나같이 키와 관련돼 있다. 이처럼 키는 예민한 문제이다.

이번 겨울방학을 맞아 자녀 롱다리 만들기 작전에 들어간 부모가 적지 않을 것이다. 밤이 긴 겨울이 키가 자라는데 최적의 계절로 여겨서다.

성장호르몬을 투여하거나 성조숙증을 치료하거나 사지 연장술(일리자로프 수술)을 동원하는 등 의료 기술에 의존하려는 사람도 있다. 힘들고 비용이 만만찮지만 효과는 그리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다. 성장호르몬을 투여해도 최종 키를 더 자라게 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의 가장 중요한 결정 인자는 유전자(DNA)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키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아가 성인이 됐을 때 대략적인 최종 키는 부모 키(합)에서 13㎝를 더한 뒤 2로 나눈 값이다. 여아의 최종 예상 키는 부모 키에서 13㎝를 뺀 뒤 2로 나눈 수치 정도이다.

유전적으론 동일한 사람인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최종 키에 대한 유전자의 기여도는 70~80%로 추정됐다. 나머지 20~30%는 영양ㆍ운동ㆍ수면·스트레스·질병 등 후천적인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영양ㆍ운동ㆍ수면 등 생활습관을 ‘성장 친화적’으로 개선하면 ‘숨은 키’ 10㎝를 키울 수 있다고 본다.

“키는 타고 나는 거야”라고 하면서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은 금물이다. 과거엔 한국 남성의 평균 키가 160㎝ 이하였다. 이는 어릴 때의 영양 상태가 나빠서 자신의 유전자가 정해준 키보다 덜 자란 셈이다. 한국인의 평균 키가 20년 동안 3㎝ 가량 성장한 것은 영양상태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영양 불량은 명백한 성장 방해 요인이다. 같은 민족인데도 북한 사람의 평균 키가 남한 사람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 단적인 증거다. 1998년 UNICEF 조사에 따르면 북한 어린이의 16%가 심각한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으며 62%가 발육부진 상태이다. 북한사람의 키는 2008년 미국 대선전 때도 언급됐다. 공화당 후보인 존 메케인은 “한국인은 북한 사람보다 평균 3인치(7.6㎝)나 키가 크다”고 언급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잡식 동물이다. 그러나 식성에 따라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로 나눌 수 있다. 요즘 채식은 건강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키와 체구를 키우는데 채식보다 육식이 유리하다. 육식을 주로 하는 서구인이 채식 위주인 동양인에 비해 평균 키가 더 큰 것은 이래서다. 육식을 즐긴 구석기인은 현대인보다 오히려 더 건장했다. 구석기시대 남성의 평균 신장은 1m77.2㎝였다. 그 후 농경시대(청동기)가 시작되면서 1m66㎝로 작아진다. 동양인 중 몽골인의 키가 상대적으로 큰 것은 육식 위주의 식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황량한 몽골의 초원에선 채소·과일이 거의 자라지 않아 육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키 성장에 필수적인 4대 영양소를 꼽으라면 단백질·칼슘·아연·철분이다. 우리 몸은 긴 뼈를 성장시키는데 지방·탄수화물 보다 단백질·미네랄(칼슘·철분·아연)을 더 쉽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중 단백질은 근육·혈액의 재료가 되는 영양소이다. 뼈를 지지하는 근육·인대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다. 단백질은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 살코기, 고등어·조기·정어리·갈치 등 생선, 된장·두부·두유 등 콩식품, 우유·요구르트·치즈 등 유제품, 홍합·전복 등 조개에 풍부하다.

키가 크려면 뼈가 자라야 한다. 뼈를 형성하는 데는 칼슘과 인(燐)이 필수적이다. 이중 인은 일반 식품 속에 많이 들어 있어서 섭취가 부족한 경우가 거의 없다. 문제는 칼슘이다.

칼슘은 우리 국민이 가장 부족하게 섭취하는 영양소. 우유 등 유제품, 멸치·뱅어포·전어 등 뼈째 먹는 생선, 콩, 미역 등 해조류에 풍부하다. 특히 우유·치즈·요구르트 등 유제품에 든 칼슘은 체내 흡수율이 높아 가장 훌륭한 칼슘 공급원으로 통한다. 어린이의 하루 칼슘 권장량은 700∼800㎎. 청소년기엔 900~1,000㎎을 먹어야 한다.

칼슘은 기껏 섭취해도 체내 흡수가 잘 안되는 미네랄이다. 따라서 키가 자라게 하려면 칼슘의 체내 흡수율을 높이는 데도 신경써야 한다. 비타민 D가 칼슘의 체내 흡수율을 높여준다. 이 비타민은 생선 기름·계란 노른자·비타민 D 강화 우유·버터 등에 들어 있다. 햇볕을 받으면 몸에서 생성된다. 그래서 별명이 ‘선샤인 비타민’이다.

반대로 인·카페인·과량의 동물성 단백질·정제된 설탕·술·담배·운동 부족·지나친 소금 등은 칼슘의 체내 흡수를 방해한다.

전문가들은 성장기엔 커피ㆍ홍차 등 카페인 음료나 콜라 등 탄산음료를 되도록 적게 마시라고 당부한다. 그 속에 든 카페인이 칼슘의 흡수를 방해, 뼈의 성장을 저해해서다. 인이 많이 든 사골도 칼슘 흡수의 훼방꾼이다.

아연과 철분도 키의 성장에 깊숙하게 관여한다. 10여년 전 키가 작은 멕시코 어린이에게 아연·철분을 먹였더니 먹이지 않은 아이에 비해 1년 후 평균 키가 1㎝ 더 커졌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가난하거나 영양장애가 심할수록 아연·철분 제공의 효과가 뚜렷했다.

아연은 조직의 성장과 재생에 필요한 미네랄이다. 단백질 합성에도 필수적이다. 연골 형성, 콜라겐 합성에도 기여한다. 따라서 어린이나 청소년의 아연 섭취가 부족하면 성장은 물론 골격·성적(性的) 발달이 지연된다. 가벼운 아연 결핍도 성장을 늦출 수 있다. 대표적인 아연 함유 식품은 굴이다. 조개류·육류·간·우유·계란 등 주로 동물성 식품에 많다.

모유의 아연 함량은 낮다. 하지만 아기의 몸안에 들어가면 흡수가 아주 잘 된다. 어린이의 하루 아연 권장량은 5∼8㎎. 청소년기엔 9~10㎎으로 늘어난다.

철분의 섭취가 부족하면 철분 결핍성 빈혈이 생긴다. 빈혈이 있으면 식욕이 떨어져 성장에 지장을 받는다. 간·육류·닭고기·생선·계란 노른자·녹색 채소·콩·견과류 등이 철분 함유 식품이다. 철분은 칼슘보다 체내 흡수율이 더 떨어진다. 콩·녹색 채소 등 식물성 식품에 든 철분은 흡수율이 특히 낮다. 철분 흡수율은 과일·채소 등 비타민 C가 풍부한 식품을 함께 먹으면 높아진다. 커피를 마시거나 곡류를 먹을 때는 낮아진다. 옥수수나 오트밀(귀리 가루)에 포함된 피틴산은 키의 성장에 중요한 아연·철분의 생체 이용을 방해한다.

우유는 철분 함량이 낮은 식품이다. 따라서 이유 시기의 아기가 우유만 마시고 다른 음식을 먹지 않으면 철분 결핍성 빈혈→성장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이 이유식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철분 함량을 꼭 살피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래서다.

키와 관련해 가장 자주 언급되는 식품은 우유와 콩나물이다.
“우유 마시면 키 큰다”, “콩나물 먹으면 쑥쑥 큰다”는 말이 있다.
우유는 분명히 키 성장에 이로운 식품이다. 키가 자라는데 필요한 4대 영양소중 철분을 제외한 나머지 셋(단백질·칼슘·아연)이 풍부해서다.

우유 1컵(250㎖)엔 약 8g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 하루 세컵을 마시면 24g 가량의 단백질을 섭취하게 된다. 이는 어린이의 하루 단백질 공급량인 24∼28g에 거의 맞는 양이다.

건국대병원 가정의학과 최재경 교수는 “콩나물의 키 성장 효과는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했다. 콩나물엔 칼슘·인이 소량 들어 있으나 양이 적어서 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녀의 ‘롱다리 작전’을 벌일 때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영양소도 있다. 탄수화물과 지방(특히 트랜스 지방)이다.

과도한 탄수화물ㆍ지방 섭취는 비만을 유발한다. 비만으로 인해 피하지방이 축적되면 비만세포에서 여성호르몬이 분비돼 정상적인 성장을 저해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의 연구는 키를 크게 하는 식품이 아니라 어떤 영양소가 부족했을 때 키의 성장이 지연되는 지에 집중됐다.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조정진 교수는 “단백질·철분·칼슘·아연 중 한 영양소만 부족해도 성장 장애가 온다”며 “결핍된 영양소 하나를 보충한다고 해서 지연된 성장을 100% 따라 잡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성장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란다. 조교수는 편식 없는 균형잡힌 식사가 키를 크게 하는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한 식품군을 과다 섭취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식품군의 섭취가 부족해져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소 하나가 결핍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예로 옥수수 빵만 먹는 멕시코 어린이의 성장 속도는 매우 느렸다. 이유는 고기·과일·채소 등 다른 식품의 섭취가 부족해진 탓으로 풀이됐다.

음식 이상으로 키 성장에 중요한 것이 꾸준한 운동이다. 수영ㆍ댄스ㆍ배구ㆍ농구ㆍ테니스ㆍ배드민턴 등은 키를 크게 하는 운동이다. 줄넘기ㆍ철봉 매달리기ㆍ사이클링ㆍ조깅 등도 유용하다.

운동이 키 성장에 유익한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운동 직후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둘째, 운동 도중 성장판이 자극돼 자연스레 키가 자란다. 셋째, 운동을 통해 근육을 발달시키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것도 성장을 돕는다. 운동량은 주 3회 이상, 1회 30분가량이 적당하다. 강도는 땀이 살짝 나올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힘들고 과도한 운동을 하거나 무거운 역기를 드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다.

겨울 방학 기간에 자녀에게 충분한 수면 시간을 허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들은 자면서 큰다”는 할머니 말씀은 100% 맞다. 숙면을 취하면 키가 잘 자란다. 잠이 들기 시작한 지 1~2시간 후(숙면 상태)에 성장호르몬 분비가 가장 왕성하다. 성장호르몬의 분비량은 밤 10시∼새벽 2시에 최고점을 찍는다. 밤 늦게까지 PC 게임에 열중하면 키는 손해본다.

수면방해 요인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가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있다면 원인을 찾아 치료해줘야 쑥쑥 자란다.

자녀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도 키 성장에 플러스 요인이다. 스트레스는 성인만 받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ㆍ청소년의 스트레스는 마땅한 출구도 없어 더 힘든 측면이 있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다량 분비된다. 이런 상태에선 성장호르몬이 덜 분비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