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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우리아이들

인터넷은 ‘도박 스쿨’… 아이들이 위험하다

인터넷은 ‘도박 스쿨’… 아이들이 위험하다

청소년 5명에 1명 중독 위험
부모 주민번호로 쉽게 접속
놀이하듯 고스톱·카드 몰입
고액 아이템 현금 거래까지

 

강원도 정선군에 사는 박모(16)군이 인터넷 고스톱에 빠진 건 3년 전이다. 학교에 다녀오면 잠잘 때까지 최소 예닐곱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고스톱을 쳤다. 사이버 머니를 충전하는 데만 한 달에 20만원씩을 쓸 정도였다. 엄마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면 쉽게 도박 사이트에 가입할 수 있었다. “가끔 크게 점수가 나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한 판만 더 하면 진짜 크게 이길 것 같아서 멈추기가 힘들어요.” 박군은 1년째 도박 중독 예방시설인 ‘희망센터’에서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청소년 도박 중독이 심각한 수준이다. 박군처럼 도박에 빠졌거나, 빠질 위험이 높은 청소년이 5명 중 1명꼴이라는 보고서가 2일 나왔다. 도박을 접하는 주요 경로는 인터넷이었다.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김성이 위원장)가 충남대 산학협력단과 실시한 실태조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팀이 대전 지역 중·고등학생 894명을 대상으로 도박 중독 선별 검사를 한 결과, 전체의 5%가 도박 중독 증세를 보였다.

15.5%는 중독 위험이 높은 상태로 나타났다. 2002년 캐나다에서 실시한 같은 조사에선 청소년 2.2%만이 중독 위험 또는 중독 수준이라고 나왔다.

연구에 참여한 협성대 신원우(사회복지학) 교수는 “조사 기간 등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국내 청소년의 도박 중독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내 청소년의 도박 중독 성향이 높게 나온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인터넷을 꼽는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고스톱·포커 등 도박 사이트에 쉽게 접속할 수 있는 문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도 “도박을 해봤다”고 답한 청소년의 84%가 인터넷을 경로로 꼽았다.

‘희망센터’ 임인자 사무국장은 “예전엔 명절 때 친척들이 모여 가끔 고스톱을 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혼자서도 언제나 고스톱을 칠 수 있게 됐다”며 “누구나 안방에서 도박을 즐기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도박은 화려한 화면과 생생한 소리 등 특수효과 때문에 더 쉽게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인터넷 도박을 단순히 놀이로 여기는 부모가 많아 청소년들도 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신원우 교수는 “심지어 아빠가 인터넷으로 고스톱을 치다가 ‘이제 네가 하라’며 자녀들에게 권하는 일도 흔하다”며 “그만큼 인터넷 도박에 대한 경계심이 약하다”고 말했다.

리니지·와우 등 청소년들이 즐기는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도 도박성이 강하다. 싸움에서 이기면 무기·갑옷 같은 아이템을 얻게 되는데, 이를 얻기 위해 게임에 빠져드는 청소년이 많다는 것이다. 이 아이템들은 암암리에 현금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고영삼 센터장은 “가치 있는 것을 걸고 한판 승부를 낸다는 점에서 온라인 게임은 투기성·도박성이 농후하다”며 “단순한 인터넷 중독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의 책임연구원을 맡은 최해경(사회복지학) 충남대 교수는 "청소년 도박 중독을 막으려면 전문적인 상담과 교육이 중요하다”며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청소년 도박중독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해 내년 중 전국 중학교에서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