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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맛있는 골프

선수 캐디 “그렇게 쉬우면 너희들 시키겠니”

선수 캐디 “그렇게 쉬우면 너희들 시키겠니”

 

"언냐~언냐는 큰 대회 열리면 프로 백을 메어 달라는 요청이 많겠다. 이번 대회 때도 프로백 메주나? 대회 때 선수 캐디로 뛰면 돈도 듬뿍 버는 거 아냐?"

보통 고객들은 아주 오래된 고참들이 대회 때 선수 백을 메주는 줄 알고 있나 보다.

그리고 엄청난 돈을 받는 줄 아나 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물론 각 골프장마다 다를 수 있지만). 울 회사 같은 경우엔 여자 대회 땐 2~3년 차의 캐디가 선수 캐디로 뛰고 남자 대회 땐 1년 이상의 캐디들이 선수 캐디로 뛴다.

즉 결과만 말하자면 아주 고참은 대회 때 오히려 쏘오옥 빠진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1~3년 차 사이에 이미 선수백을 멘 경험이 있으므로 더 이상은 선수 캐디로 뛰지 않는다(이게 고참에 대한 골프장에서의 대우이다).

선수백을 메라고 하면 무조건 'NO'라고 외친다. 대회 전날까지 몇 번의 설득 끝에 마지못해 백을 메는 경우가 많다.

선수를 위해서라면 아주 오래된 고참들이 선수의 백을 끌어주면 선수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선수백 메는 일이 정말로 고통스럽다.

평지라고 생각했던 곳도 1인용 카트에 백을 메고 걷다 보면 팔다리가 따로 논다. ㅋㅋㅋ

플레이 시간이 6시간 이상 걸릴 때도 많고 정신적인 부담도 평소 아마추어와의 라운드 때 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짜 고참들은 포어 캐디(한 홀에 한 명씩 볼이 오비가 났는지 확인해 주는 사람)나 무전기 하나 들고 선수들 미행하면서 방송에 나갈 수 있게 남은 거리 혹은 그 홀 스코어를 재빨리 불러주는 역할을 한다.

TV를 보다 보면 생중계인데 프로님들의 남은 거리 사용클럽, 그린 라인 등이 실시간으로 아나운서에 의해 보도되는 상황을 종종 보는데 첨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에 이걸 보았을 땐

'우와~저 아나운서 분들은 어떻게 저렇게 다 알 수 있을까?'하고 무지 신기해 했었는데 다 이렇게 한 홀에 한 명씩 스토커처럼 미행하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TV에서 생중계할 때 방송 본부에서는 무전으로 선수들의 사용클럽을 샷하기 전에 재빨리 말하라고 말한다. 보통은 선수의 캐디와 손짓으로 사인을 주고 받는다.

그러나 이것도 조금은 고통스러운 게 선수가 샷 감이 좋거나 스코어가 좋을 땐 선수의 캐디가 손짓으로 '몇 번 아이언을 잡았다'라고 사인을 주지만 선수의 스코어가 엉망일 때는 캐디조차 몇 번 아이언을 잡았는지 말해주지 않고 먼산만 바라만 보고 있다.

방송은 나가야 하고 선수와 당 캐디는 먼산을 바라보며 사용클럽을 알려주지 않을 땐 어쩔 수 없이 그냥 나의 느낌으로 클럽을 말해 줄 수 밖에 없다.

가장 당황스러울 땐 당황스러운 클럽 선택을 하였을 때이다. 어느 유명한 프로님께서(성만 말해도 누군지 아는 프로님) 남은 거리 150야드에 사용 클럽 5번 아이언을 잡았을 때 그것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 방송에 "네~000프로님 150 야드에 5번 아이언을 잡으셨네요~" 라고 방송에 나가면 그걸 보는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물론 프로님은 아이언의 샷 감이 좋지 않아 방향성을 위해 펀치 샷을 할 생각에 잡으셨겠지만 내 느낌으로 그걸 방송에 내 보내기엔 너무 사연이 긴 듯했다)

이러한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무전으로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네~000 프로님 남은 거리 170야드 현재 앞 바람, 클럽은 5번 아이언 잡으셨습니다' 라고 방송에 내 보냈다.

한번은 첨으로 대회 때 선수백을 메는 1년6개월 차 캐디가 무엇이 그리 신이 났는지 아침부터 콧노래를 흥얼흥얼 불렀다.

대회 전날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카트에 광내고 아이스 박스에 프로님 주겠다고 얼음물 듬뿍 챙겨 놓았다.

모두들 "저 아이 왜 저러냐? 왜 평소에는 안 하던 카트에 광을 드리고 있어?"

그리고 그 다음날 신입 캐디가 하는 말 “선배님 대회 땐 5인승 카트 타고 페어웨이 안으로 들어가도 되죠?"

이 말에 모두들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랬다. 그녀는 백 1개를 싣고 5인승 카트에 프로님을 태우고 페어웨이 위로 붕붕 날라다 닐 생각이었나 보다. ㅋㅋㅋ.

고참 언니가 한마디 던졌다.

"이 녀석아~5인승 카트 타고 대회 열면 너희들 시키겠냐? 고참인 우리들이 하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