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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맛있는 골프

92세 할아버지 ‘골프열정은 청춘’

92세 할아버지 ‘골프열정은 청춘’

 

오감자의 맛있는 골프<71> 92세 할아버지의 골프 애정, 100야드 날리면서도 똑바로 날리고 싶어 레슨 요청

한국 골프장의 단점 중 하나가 '카트 코스내 진입금지(물론 일부 허용하는 곳도 있다)'이다.

92세의 할아버님과 80대 할아버님 두 분을 모시고 라운드를 할 때였다. 일하면서 카트를 타고 코스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매 홀마다 느껴진 하루였다.

특히 92세의 할아버님은 이미 지긋하신 연세로 클럽하우스에서 티잉그라운드로 나오는데도 한나절(?)이었다.

그나마 젊으신 두 분의 할아버님은 실버 티에서 치시고 92세의 할아버님은 레이디 티에서 치겠다며 내게 말했다.

레이디 티로 아주 천천히 카트로 모시는데 행여나 내가 카트에서 떨어트릴까봐(놀이공원에서 손잡이를 잡듯) 손잡이를 심줄이 튀어나오도록 두 손으로 꽉 잡으셨다 .

드라이버 거리 100야드 정도. 우드는 70 야드.

100야드 밖에 나가지 않는 드라이버를 치는데도 가운데로 똑바로 보내고 싶은 욕심이 있으셨는지 "아가야~여긴 어딜 보고 쳐야하니?" "아가야~내 볼 가운데로 갔니? 혹시 슬라이스는 안 났니?"

카트에 타고 내리실 때마다 힘겨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카트도 한 번에 타질 못하고 손으로 왼쪽 발을 들어서 먼저 카트에 올리고 체중을 왼쪽으로 살짝 옮긴 후 다시 손으로 오른쪽 발을 들어서 올리셨다.

뒷팀에서는 난리가 났다. 3인 플레이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홀을 가면 앞팀이 아닌 빨간 깃대만이 나를 반겼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조금만 빨리 가면 안 될까요? 두 팀이 너무 기다리셔서…."

나름 큰소리로 외쳤는데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표정이시다. 자꾸 내게 재밌는 농담을 해 주겠다며 말씀하신다.

듣고도 웃지 않고 무표정한 내 모습을 본 할아버님은 똑같은 이야기를 또다시 하신다. 아마도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시다. 이번에도 그냥 무표정으로

있었는데 정말 굉장한 고집이시다. 똑같은 농담을 3회 연속 내 달팽이관에 강하게 주입시켰다. 그랬다. 나는 재빨리 박장대소 해야만 했다. 나의 연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하하하하~재밌네요(가식적인 웃음)"

"그치? 그럴 줄 알았어. 다른데 가서 또 말해줘야지"

조금 빨리 가자고 또 말씀드렸다. 또 듣는 둥 마는 둥 하늘만 바라보신다.

차라리 "우리가 나이가 많고 힘들어서 그렇다"라고 변명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건 완전히 '소귀에 경 읽기'다.

뒷팀 손님이 경기과에 연락을 했는지 진행요원이 오셨다. 나름 공손하게 말씀드렸는데 들으신 건지 못들은척 하는 건지 그저 아무 말 없이 숨만 거칠게 내 쉬었다. 그 거친 숨소리만 들으면 내 카트 뒤에 119를 함께 대동하고 다녀야 할 듯 한 분위기마저 든다.

120야드 파3홀에서 드라이버로 티샷을 하신 할아버님.

"아가야 내 볼 어디로 갔니?"

"네~조금 짧았고요. 그린 근처에 있어요"

"내 스윙은 예뻤어?"

"네~네~그렇고말고요"

진행요원은 재빨리 할아버님의 공쪽으로 달려가 "고객님 볼 여기 있습니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할아버님은 갑자기 화를 버럭 내시며 "아냐 이거 내 볼이 아니야~난 분명히 빨간 공을 쳤다고"

"아~고객님 제가 그린 뒤에서 고객님 티샷하는거 봤습니다. 이게 확실합니다(그랬다. 그 공은 분명 92세 할아버님의 공이 확실했다)"

"아냐~아냐 난 빨간 공을 쳤다고~~내 빨간 공 찾아내~"(진행요원은 나를 바라보고 나는 하늘과 땅만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결국 카트에 겨울에 썼던 빨간 공 하나를 꺼내와 할아버님 공 옆에 놓았다. 그리고는 "여�습니다. 빨간 공"

그제야 플레이는 계속됐다. 눈물 나게 긴 하루였다.

그러나 왠지 내가 힘든 것보다는 할아버님의 행동에 가슴이 아파왔다. 100야드를 치면서도 똑바로 보내고 싶어 내게 레슨까지 요청하셨던 할아버님.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