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고객들의 놀라운 변신!
몇 년 전 어느 날.
아황산가스 0.009ppm, 오존 0.017 ppm. 북동에서 남동풍으로 바람이 부는 어느 멋진 날이었다.
1부 마지막 팀으로 일찍 끝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참 들떠 있었는데 나의 기분과는 달리 우리 팀 고객님들께서 첫 홀부터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예~그랬습니까? 아~그렇군요"하면서 들었는데 달리는 카트 안에서조차 우리 회사 험담 및 사장님 흉을 보시는 거였다.
하다못해 '우리 회사에 있는 청솔모 외모는 왜 이렇게 격이 떨어지냐'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지적이 들어왔다. 내 앞에서 대 놓고 말은 안했지만 이미 나의 외모 지적도 했을 것이다.
모든 게 불만이 가득해서 이신지 티잉 그라운드에는 고객의 안전 및 잔디가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기 위해서 제발 한분만 올라가셔야 한다고 해도 매번 4분이 한꺼번에 올라가시며 '잔디는 밟을수록 더 강해진다'며 마구 마구 세게 밟으셨다.
홀 위치도 맘에 안 드셨는지 홀 뚫은 분 주민등록 번호 및 호적 등본까지 떼어 오라 하셨다.
또한 담배꽁초도 코스로 가지고 나가서 '훠이~훠이~산불이나 나버려랏~'하는 마음으로 아무데나 버리곤 하셔서 내가 뒤꽁무니 �아 다니며 담배꽁초를 받으러 다녔었다.
9홀을 도는 2시간이 20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도 우리 회사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지라 우리 회사와 사장님 험담에 상처를 듬뿍 받아 슬픔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다정한 위로가 필요했다.
이렇게 슬픔에 취해 9홀을 돌고 잠시 대기 중에 있는데 나에게 다정한 위로를 해줄 왕자님이 나타나신 거였다.
그분은 다름 아닌 우리 회사 사장님(기쁜 마음에 사장님께 달려가 와락~ㅋㅋㅋ).
나인 홀을 돌고 나면 바로 뒷팀으로 2부 첫팀이 뒤따라오기 시작한다.
이게 웬일. 바로 뒷팀에 사장님이 지인 분들과 라운드를 하러 나오신 거였다.
사장님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 기분은 마치 어렸을적 친구들한테 뒤지게 얻어맞다가 장보고 집에 가는 엄마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평소 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생달걀 하나 깨 먹은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92도로 몸을 꺾어 외쳤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저희 뒷팀입니까? 잘 치십시요~"
나는 다시 나의 고객들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그리고는 "고객님 아까 전에 그~저희 회사와 사장님에 대한 불만 사항 부분은 제가 사장님께 충분히 잘 말씀 드리겠습니다"고 외쳤다.
그러자 그분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는 과묵한 언니가 최고로 좋더라"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티잉 그라운드에 딱 한명만 올라가서 올바른 자세, 정직한 스윙으로 부러진 티도 주워 오면서 쓰레기통에 예쁘게 가져다 버렸다.
그렇게 느렸던 플레이도 티샷을 마치자마자 살금살금 카트길로 한두 분씩 걸어가고 계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나 절대 뒤에 사장님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오해하지마. 민생고(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씀?)부터 해결하고 싶어서 먼저 서둘러 가는 거야" 며 걸음을 재촉했다.
기브도 절대 없던 분들이 뒤를 수시로 돌아보며 "오케이~오케바리~컨시드~"를 마구 마구 외치셨다.
또한 사장님이 혹시나 볼까봐 담배꽁초도 주우면서 다니셨다.
"아니~안그러셔도 됩니다. 전반처럼 편안한 플레이 하십시요"라고 말씀드려도 "우리는 원래 이런 사람들이야. 아까 전반전에는 진상 흉내 한번 내본 거야 언니 진짜 눈치 없다. 우리의 연기를 진짜로 받아들이다니. ㅋㅋㅋ"라며 한 마리 순한 양으로 변신했다.
강자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손님들을 보면서 묘한 희열과 함께 한편으로는 씁쓸해지는 기분이 든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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