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프로의 수난
최근 우연치 않게 프로님들과의 라운드가 몇번 반복이 되었다.
나는 프로님과의 라운드가 좋다. 그 이유는 스윙에 온갖 데코레이션하는 아마추어 스윙보다는 가지치기 잘 된 프로님의 파워풀한 스윙이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공과 함께 300야드씩 날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추어 골퍼에게 칭찬을 들을 때보다 유명한 프로님에게 '일을 잘 한다~'는 칭찬을 들을 때 더 뿌듯함을 느낀다.
최근에 모시게 된 한 연약한 프로님.
얼굴만 봐서는 도무지 프로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순진무구한 얼굴과 행동들. 일 나가기 전에 카트 옆에서 서성이는 프로님을 향해 옆 동료가 장난을 쳤다.
"그 언니 조심하세요. 굉장히 까탈스럽고 사나워요.ㅋㅋㅋ"
그저 장난으로 던진 말 한마디에 프로님은 약간 겁을 드셨는지 티잉그라운드에 나가서 내게 무슨 할 말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말씀은 못하시고 내 주위만 빙빙 돌며 서성였다.
당연히 프로님이시니깐 챔피온티에서 치시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카트를 챔피온티 앞에 세웠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클럽 체크만 하고 있었다.
티오프 시간이 다가오자 프로님은 더더욱 불안한 표정을 보이며 내 주위를 하염없이 맴돌았다.
"왜요? 제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니~저~그러니깐 요~언니도 알다시피 제가 프로잖아요. 물론 세미프로긴 하지만~그러니까 제가~어~(말을 버벅이며 말씀을 제대로 못하시는 프로님)"
답답한 마음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챔피온티에서 치신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렇게 하세요"
"아니~저는 어렵게 꺼낸 말인데 너무 쉽게 대답을 해주시니 황송하옵나이다"
이리하여 프로님의 첫 티샷이 시작되었는데 첫 홀부터 OB였다. 극적으로 더블보기를 하고 두 번째 홀은 보기. 나는 잠시 볼타월로 그분의 가방에 새겨진 KPGA로고를 가리고 있었다. 행여나 누가 볼까봐.
매번 세컨드 샷에 남은 거리는 200야드에서 210야드.
파3홀도 215야드, 210야드. 그렇지 않아도 바람만 불어도 낙엽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프로님이 남은 거리를 들을 때마다 절망을 하셨다.
땅 꺼집니다. 한숨은 이제 그만~
우리 회사에서 한 번도 챔피온티에서 쳐 본적이 없다는 프로님은 오늘 완전 기절 일보 직전이셨다.
연약한 우리 프로님은 "언니 나 소원이 있는데요. 제발 세컨샷에서 숏 아이언 한번 쳐 봤음 소원이 없겠네요~사실 어제 밤까지 연습장에서 숏 아이언 8번, 9번 요런 것만 연습했는데 오늘 그런 아이언은 쓸 일이 없네여(공부는 많이 했는데 시험범위 잘 못 알고 공부한 거 맞죠?)"
동반자 분들도 프로님이 안쓰러운지 눈물을 글썽이며 '이 그 불쌍한 것 뭐 하러 프로가 되가지고서는 저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지~그냥 우리처럼 편하게 아마추어 골퍼가 되면 얼마나 편해?'라는 표정을 짓고 계셨다.
가장 긴 파5홀에 도착. 아마추어 골퍼 두 분에게 "곧 프로님 공이 레이디티 근처에 떨어질테니 여기서 구경하고 있으라고 하였다. 동반자 분들은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프로의 공이 레이디티 앞에 떨어지려고 ㅋㅋㅋ"
나는 프로님을 모시고 챔피온티로 갔고 프로님은 힘껏 티샷을 날렸다.
화이트티까지 카트를 타고 가 보니 동반자분들은 웃느라 티잉그라운드에 쓰러져 계셨다.
프로님의 공이 레이디티도 못가 있었기 때문이다.(챔피온티가 엄청 뒤에 있답니다)
"꺄르르르르~ 난 언니가 장난할라고 말한건줄 알았는데 정말 공이 레이디티 근처에 오네요 ㅋㅋㅋ"
세컨드 샷을 레이디티 근처에서 하자 뒷팀 손님들은 웅성웅성~
나중에 뒷팀 언니가 하는 말 "너네 고객님중 한분 초보자야? 티샷이 레이디티도 못 갔는데 왜 안 뛰어 다니냐고 울 손님들이 뭐라 하더라~(차마 이 말은 프로님께 못전해드립니다. 아~눈물이 납니다)
레이디티 근처에서 세컨샷을 하는 프로님의 모습을 본 동반자분들은 사진을 찍어 연습장에 걸어놓아야 갰다며 약을 올렸다.
'제목-이프로의 굴욕 ㅋㅋㅋ '
연약한 이프로님이 18홀을 완주한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운 하루였다.
연약한 체력으로 어떻게 프로테스트에 합격했는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프로님 혹시 KPGA 정회원이 아닌 유령회원아닌가요? ㅋㅋㅋ)
골프 매너하나 만큼은 대한민국 최고였다. 정말 따뜻한 마음씨를 지니신 분이었다. 담에 오실 땐 보약 두 첩 지어 드시고 체력 보강하시어 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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