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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맛있는 골프

선입견, 관상만 보고 판단했다가 낭패

선입견, 관상만 보고 판단했다가 낭패

 

골퍼가 캐디의 첫인상을 보면 대략 구력을 판단할 수 있듯이 캐디 역시 골퍼의 가방이나 첫 인상(옷 색깔. 스타일) 등을 보구 대충 구력을 상상하게 된다.

우선 가방을 열었을때 드라이버의 도수(8도, 9도, 10.5도인지를 확인), 아이언의 페이스 등을 살펴본다. 너무 깔끔한 클럽은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확률적으로 8도, 9도의 드라이버의 주인님은 골프 무림계에서 껌좀 씹고 공좀 띄운다는 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아이언 헤드가 작을 수록 잘 칠 확률이 많다.

아이언 헤드가 작으면 맞추기 힘들다고 아마추어 골퍼들은 아우성 친다. ㅋㅋ 정말 사실일까?

얼마전 그린이 동네 '미친X' 날뛰듯이 엄청 튈때 였다.

프로님과 엄청 무섭고 첫홀부터 말 한마디 안하시는 골퍼분.

그리고 그럭 저럭 굴리는 두분이 계셨다.

프로님은 전반 내내 계속 왕 슬라이스를 내시며 "엘보가 왔니, 오십견이 왔니" 등의 온갖 별명을 동원하며 45개를 치쳤다. 엄청 무섭게 생기시고 말씀이 없으신 분은 43개를 쳤다.

그분은 정말로 말씀이 없으셨다. 하지만 그냥 그 험악한 얼굴과 풍기는 자태만으로도 나를 긴장시키기엔 딱 좋은 얼굴이었다.

어프로치 거리를 물어보시지 않고 계속 치시다가 한 7번홀쯤부터 내게 거리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나름대로 신경 바짝 써서 불러드렸는데 항상 내가 불러준 거리보다 20 야드씩은 더 나가는 것이었다.

"30 야드입니다"하면 50야드를 날리시고 "50 야드입니다"하면 60~70 야드를 치시는 것이었다.

또한 벙커샷을 하는데 샌드웨지를 늦게 갖다드려서 그분은 벙커샷도 피칭웨지로 벙커샷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분의 표정을 하나 하나 살폈다.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왠지 나를 곧 혼낼듯한 표정이 비췄다.

"나 떨고 있니?"


그분의 얼굴을 보며 다가가 사과도 못드리고 안절부절하는 내 모습을 본 프로님은 내게 물었다.

"언니~왜그랴? 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해?"

"아니~그게 아니구요. 제가 아까부터 저분에게 계속 실수를 해서요"

"실수? 어떤 실수"

"아니요 어프로치 샷 할때 저랑 궁합이 안맞아서인지 계속 오버되구요. 벙커 샷도 피칭으로 하셨거덩요. 아무래도 저때문에 완전 삐치신거 같아요"

"푸~하하~뭐야~삐치긴 뭘 삐쳐. 저 사람 원래 표정이 저래"

"그리고 어프로치 거리? 아까 내가 봤는데 그거 언니가 부른 거리가 얼추 맞았어. 괜히 쫄았구나? 이쯤되서 비밀하나 말해줘?"

"뭔데욧?"

"저사람 골프친지 3개월 됐어. 안믿어지지?" 그러면서 그분을 부르셨다.

"어이~000씨~자네 골프친지 얼마나 됐지?"

"네~이제 3개월 다 되어갑니다. *^^*"

"언니가 자네를 완전 고수로 봤나봐. 아까 벙커 샷도 샌드웨지를 늦게 줘서 삐쳐서 피칭웨지로 친줄 알고 오해하고 있네. 그리고 어프로치 샷 거리도 실수했다고 자학하는 중이네"

그분이 처음으로 말을 여셨다.

"언니~저~3개월 되었써용. 아직 어프로치 거리를 못맞추고 있어서 고민이거덩요. 그리고 저 아직 샌드웨지는 잘 못다뤄서 벙커샷도 피칭웨지로 친답니다"

아~나도 나름 골프장에서 관상 잘 보기로 유명한데 오늘 완전 속아버렸네.

"근데 3개월 되신분이 왜 이렇게 잘치시는 거예요?"

"사실 저 하루에 6시간씩 연습합니다. 수시로 스크린 골프도 치구요"

"암튼 제가 잘난것도 있지만 나름 열심히 연습한 결과예요"

"지난번엔 냉정한 캐디 언니 만나서 90개 넘게 쳤는데 오늘은 따땃한 언니 만나서 90개 안쪽으로 칠수 있었어요"

이말을 들은 구력 3년의 동반자 두분은 골프 3년치면서 3개월된 햇병아리에게 돈을 잃고 험한꼴 다 당했다며 이제 조만간 골프계를 은퇴하신다며 길을 떠나셨다. 골프에서 구력이 다는 아닌가봐요. 3개월을 쳐도 이분처럼만 친다면 대한민국의 골프 실력이 훨씬 높아질꺼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