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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맛있는 골프

억울한 누명, 내 인생 최악의 굴욕

억울한 누명, 내 인생 최악의 굴욕

 

캐디라는 직업을 하다 보면 육체적으로만 힘든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신적인 고통이(?) 육체를 지배할정도로 힘든 순간도 있다.

올해로 캐디 생활 8년째가 되어가는 나에게도 정말 일하는 도중 코스를 뛰쳐나와 집으로 가고 싶은 사건이 몇번 있었다. 그중 가장 최악의 순간은 18홀중 6홀 정도를 눈물, 콧물, 침까지 얼굴에 뒤범벅 된채 돌았던 기억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4~5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도 나름 어린 시절이었죠)

즐거운 분위기속에 9홀을 마치고 4팀 정도 대기팀이 있었다. 우리팀과 우리 뒷팀은 같은 일행이었다.

친구분들 사이는 아니었고 회사 상하 수직 관계였다.

우리팀에는 드라이버만 5개를 가지고 오신 A라는 분이 계셨고 우리 뒷팀은 그의 바로 직속 부하 직원(B)가 었었다.

A골퍼님은 골라잡는 재미가 있다며 전반 9홀을 새로 가져온 5개의 드라이버를 가지고 신나게 시타를 하시는 중이었다. 내게는 본인의 드라이버는 본인이 그 홀 산새와 티잉 그라운드의 수맥 상황을 지켜본후 결정하시겠다면서 신경의 전원을 오프(OFF)시켜 달라구 하셨다.

10 번홀 티샷. A님은 드라이버를 들고 티잉 그라운드에 수맥이 흐르지 않는 곳에 티를 꽂은 뒤 힘차게 샷을 날리셨다. 세컨드 샷으로 100M쯤 이동하려던 도중 뒷팀 캐디에게 바로 무전이 왔다.

"혹시 그 팀에 우리팀 드라이버 하나 없나요? 우리팀 B 고객님 드라이버가 없어서요"

그러고 보니 5개가 있어야 할 그분의 드라이버는 어느새 6개로 식구가 하나 더 늘어나 있었다.

다행이 100미터도 안간 상황이라 카트를 뒤로 돌려 뒷팀 언니와 중간지점에서 만나 드라이버를 전달했다.

이렇게 평화스럽게 2홀이 지나고 파3홀이왔다. 웨이브가 연결된 상황이었는데 B라는 분의 볼이 OB가 났다. 나는 수신호로 OB라고 사인을 주었다.

B고객님께서 그린쪽으로 오시더니 나를 노려보며 외쳤다.

"야! 이 도둑 X. 너 이리와봐. 너 내 드라이버 훔쳐다가 어디다 팔아먹을려구 그랬냐? 너네 회사에서는 손님의 드라이버를 훔치도록 교육 시켰냐?"

이 말을 들은 나는 일단 조금만 참고 그분께 사과를 드렸어야 했는데 뇌보다 입이 먼저 활동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이성의 끈을 완전 놓아버리고 그분께 말대꾸를 해 버렸다.

우리팀의 A고객님은 B를 말렸다.

"자네 왜 그러나 내가 드라이버가 많아서 내가 착각하고 자네 드라이버를 빼 왔네. 언니가 빼 온게 아니라구. 이곳에 와서 소란 피우지 말고 그만하게나"

B고객님은 내게 끝나자 마자 경기과로 오라며 나를 오늘부로 골프장 세계에서 매장시키겠다며 엄포를 놓으셨다. 나 역시 피가 100도 이상 끓고 있었기에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의 반 미쳐있었다.

홀이라도 밀리지 않았으면 고통이 덜 했을터인데.

이놈의 코스는 계속 밀려서 뒷팀과 어쩔수 없이 만나고 또 만나고 해야 하는 고통에 휩싸였다.

A님은 내게 걱정말라고 B가 돈을 잃어서 동반자에게는 부끄러워 화를 못내구 내게 화풀이 하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나를 타이르셨다.

나도 지난 홀을 조금은 반성하고 다시 뒷팀과 만나게 되면 사과를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뒷팀의 그분이 오자마자 또 내게 욕을 퍼 붓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잠시나마 마음먹었던 사과를 마치지 못하고 일을 마쳤다.

우리팀이 아닌 뒷팀에서의 컴프레인. 정말 오늘 완전 운수좋은 날(?)이구나.

B고객님은 회사가 떠나갈듯이 회사의 간부님들을 찾아가서 내 험담을 늘어놓으셨다.

그 시간에 A님은 경기과를 찾아가 상황 설명을 해주면서 B가 찾아와 컴프레인을 하여도 그냥 못들은척 하고 이해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 본인팀의 캐디에게는 절대 피해가 가지 않게 해 달라며 신신당부했다.

회사의 간부님들은 B골퍼의 내용을 듣고 일단 그분께 정중한 사과를 하였고 내가 아닌 뒷팀의 캐디를 불렀다.

그리고 나 대신 뒷팀의 캐디에게 잘못을 지적하였다.

그 일이 있고나서 거의 한달동안은 골퍼가 두렵고 일이 두려웠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 오르는걸 보면 어쩌면 내 인생 최악의 굴욕과 슬럼프였나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이 세상에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는 교훈도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