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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맛있는 골프

캐디 이마는 국기 게양대?

캐디 이마는 국기 게양대?

 


얼마전 타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군 골프장에서 일하는 캐디인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러한 일도 있구나 싶었다.
 
몇년전 전국민이 '대~한 민국'을 외치며 월드컵을 치룬지 얼마 안되었을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여든살 가까이 되시는 할아버님들과 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오후 6시가 되자(동절기엔 5시, 여름철엔 6시에 애국가가 울려퍼진다고 함) 인근 군부대에서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빰빠빰빠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하면서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이쯤되면 모든 팀들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아무리 드라이버의 임팩트 직전이라고 하여도 멈추어야 합니다. *^^*) 각자 애국가가 들리는 방향을 향하여 가슴에 손을 얹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애국가가 끝날때까지 서 있는다고 했다.
 
매번 있는일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한 할아버님께서 그녀에게 갑자기 화를 내시며 "김이병(그녀에게 부르는 호칭이었다. ㅋㅋ) 자네는 애국가가 매일 울려퍼지는데 태극기라도 카트에 달고 다녀야 하는거 아닌가? 대체 우리가 뭘 보구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하는가?"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할아버님께서도 성화를 부리시며 맞장구를 치셨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쓰고 있던 캐디 모자를 집어던졌다. ('더럽고 치사해서 못해먹겠다'라는 뜻으로 던졌을까요?)
 
근무중에 절대 모자를 벗어서는 아니되는걸 알았지만 할아버님의 성화에 못이겨 모자를 벗었다 .
 
그녀가 모자를 집어 던진 이유는 이러하다.
 
캐디들은 모자 안에 손수건 같은 두건을 쓴다. 그 이유는 땀 흡수를 위함이다.
 
애국자였던 김이병(?)이 했던 두건은 월드컵때 샀던 태극기가 그려진 두건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모자를 벗자 그녀의 머리에 태극기 두건이 보였고 짧은 순간에 감동의 물결이~ 아~~눈물난다~눈물나.
 
보통 민간인 같았으면 이러한 모습을 보고 웃었겠지만 네분의 할아버님은 엄숙한 표정으로 그녀의 이마를 바라보며 일제히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열심히 애국가를 따라 부르셨다.
 
하~하~하~~~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바닥을 뒹구르며 한참을 웃었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할아버님의 표정은 정말로 진지하셨다고 한다.
 
그 홀이후에 김이병이었던 그녀의 계급은 김병장으로 바뀌었다.
 
김병장! 네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너는 이홀 이후부터 김이병이 아니고 김병장이다. 알았나 김병장!
 
또한 군골프장에서는 서열이 매우 중요한데 앞팀 고객님이 본인팀의 고객보다 높은 서열이면 그늘집에서 함께 못들어 간다고 하였다 .
 
앞팀의 높으신 분들이 그늘집에서 나올때까지 그늘집 근처에 있다가 윗분이 나오시면 그때 그늘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락카 역시 서열대로 짜여져 있어서 높으신 분과는 절대로 마주칠 일조차 없도록 설계가 되어있단다.
 
내가 꺄르르 웃자 김병장은 비장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민간인 캐디가 뭘 알겠냐 '살벌한 군'의 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