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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맛있는 골프

“고객님, 고1 하고 결혼을 하라뇨”

“고객님, 고1 하고 결혼을 하라뇨”

 


지난 가을. 즉 독사(?)의 계절.
 
왠지 ‘40대 초반의 억수로 착하고 볼 잘 치는 분들이 나의 손님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는 달리 남자 두분, 여자 두분 이었다. (사실 여자 두분, 남자 두분 플레이가 서브 하기가 젤루 힘들거덩요 -_-)
 
다행이 부적절해 보이는 관계는 아니었다.*^^*
 
차라리 진정한 부부인 것이 나를 조금은 기쁘게 하였다.(이젠 별게 다 기쁘네)
 
기분은 아주 좋지 않지만 일단 인사는 정성스럽게 드렸다. 그럭 저럭 여자분들은 페어웨이 한 가운데로만 잘 굴리고 다니셨고 남자분들도 그럭 저럭 하늘로 잘 띄우는 분위기였다. 약간 무서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매우 즐거운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9번홀.(이 홀과 18번홀에서 앞팀과의 플레이 시간을 체크함) 여자분 두분께서 다른 홀과 다르게 심하게 굴리고 또 굴리고 하는 바람에 1분이 늦어버렸다.
 
속이 타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골퍼들에게 1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한국 골프장의 비참한 현실의 세계속에서 일하는 우리들에게 1분이라는 시간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방심~오만의 결과였다.(사실 매 홀 플레이가 빨랐기 때문에 나 역시 방심의 자세로 일했나보다. 흑흑)
 
후반에 들어섰다.
 
남자분께서 나를 보며 참 착실하고 부지런하며 똘망 똘망해 보인다며 며느리 삼았으면 딱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옆에서 미사여구에 휘모리 장단을 더더욱 넣어주면서 동의를 했다.
 
고객님~정말루요?(너무도 젊어보이는 부부였기에 ㅋㅋㅋ 아들이래봤자 중고등 학생으로 여겼다. ㅋㅋㅋ)
 
고객님이라니! 이젠 고객님이라고 부르면 혼날줄 알아~ 아버님이라고 불러.*^^* 그리고 저기 저 여자분한테는 어머님이라고 부르는거야 알았지?
 
네~~아버님.
 
옳지~옳지~캬~아 기분좋다. 우리 며느리가 이렇게 눈치도 빠르지. ㅋㅋㅋ 여보~ 여보~아까 우리 며눌아이가 라인 잘 봐줘서 파 했잖아~얼릉 우리 며눌아이 용돈좀 줘~

알았어요. 여보~그렇지 않아도 주려고 하던 참이었어요.ㅋㅋㅋ
 
졸지에 나는 그들과 뜻하지 않은 가족이 되었다.
 
근데 우리 며눌아이는 몇살쯤 되었나?
 
네~그건 아버님이 티샷을 후다닥 마치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퍼억~~~(연습 스윙도 안하고 후다닥 처리했음)
 
응~저는 나이가 조금 많사옵니다.
 
괜찮아~요즘은 연상 연하 커플도 많아~
 
한 25정도 되었구나?
 
우리 아들은 2x 인뎅.
 
허걱! 저는 @띠인뎅.
 
오마낫! 그러면 xx살이 넘었다는 말?
 
정말 그렇게 안보이는 뎅.
 
아버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래서 지금 며느리 나이 많다고 결혼 반대하시는거예요~아버니임~?
 
아~아~아~니. 그게 아니라.
 
에이 모르겠다. 그놈 인생은 그놈이 알아서 하라고 그래. (우린 그 놈 말구도 아들이 또 있잖아. 켁켁)
 
그때 그 상황은 첫째 아들을 볼 치는 중에 내게 팔아넘길 생각인듯 했다. ㅋㅋㅋㅋㅋ

그런데요 아버니임~ 아까 전반 9번홀에 시간 체크를 했는데요. 매번 빠르다가 그 홀에서 저희가 진행이 좀 느렸었거덩요~
 
어머~머~머. 아가야 그런일이 있었어? 우리가 왜 늦었을까잉.
 
그니깐. 어머님께서 다른 홀에 비해서 조금 더 많이 굴리시느라 1분 정도 늦어졌던거 같아요. 흑흑.
 
아이쿠! 미안해~우리가 이번 홀부터는 앞팀과 바짝 바짝 붙어줄께~
 
여보~우리 며눌아이가 하는 말 잘 들었지?
 
18번홀.
 
아가야~네가 말하던 그 홀이 바로 이 홀이냐?(시간체크 하는 홀)
 
나는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네~아버님.
 
여보~우리 며눌아이가 이 홀은 무쟈게 빨리 끝내야 한다는데.
 
당신 후다닥 굴릴 수 있겠지?
 
그럼요. 걱정 마요.
 
결국 앞팀과 5분도 안되어 홀아웃을 하였다.
 
남녀 팀을 나가서 이렇게 기분 좋게 라운드를 마쳐본적은 없었다.
 
어떤 팀을 나가도 캐디를 자신의 자식처럼 대해준다면 정말 즐겁고 참으로 따땃한 세상이 올낀데.
 
물론 그분들 역시 라운드 내내 했던 말은 농담이었겠지만 18홀 플레이가 이러한 작은 농담으로 즐거우면서도 서로가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옆에 계신 다른 남자분께서 참다 못해 한마디 하셨다.
 
아~우리가 먼저 찜했는데 벌써 가로채 간거예요? 우리도 저런 며느리 얻으면 딱인데…. (그의 아내왈)여보 우리 아들은 이제 고1 이잖아요. 정신 차리세요
 
아? 그런가? 그놈의 자식 아직 고1 밖에 안되었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