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남자 캐디의 하루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씨. 40대의 억센 남성 네 명이서 서로 핸디(캡)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내기 골프를 심하게 치고 있던 날이었다.
첫홀에 봉달희씨는 동료들에게 총 150여 점의 핸디를 받았다. 1점에 만원 꼴이면 상당한 금액이다. 왜 이렇게 많이 받았나고 놀라시겠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주었지 않았겠는가.
첫홀부터 한 타에 2점짜리 내기가 시작되었다. 매번 봉달희씨는 언덕에서 언덕으로. 페어웨이라고는 좀처럼 밟아 볼 수가 없었다. 끝나고 골프장측에 “나는 페어웨이를 한번도 밟지 않았으니 그린피나 좀 깎아 주쇼~”라고 땡깡이나 부릴 생각이었다.
홀이 갈수록 친구들의 주머니에는 봉선생의 돈으로 가득차 갔고 그의 모습을 본 캐디 김군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달희씨의 채를 뺏어서 대신 티 샷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후반 6번째 홀쯤 들어섰다. 전반에 받은 핸디는 내기가 점점 커지면서 이미 다 날라가고 가방 저 밑에 숨겨 놓았던 지갑에서 시퍼런 종이와 퍼어런 배춧잎들이 친구를 기쁘게만 했고 봉달희씨의 얼굴은 하얘졌다 파래졌다 빨개졌다를 반복했다. 오만 무지개 색깔이 다 나오고 있었다. 이번 홀도 친구들은 주특기인 장타샷을 시원하게 날린 모양이다.
“굿샷 ”
김군의 우렁찬 굿샷 소리가 봉달희씨의 가슴을 태운다.
“나 봉달희 이번에 기필코 잘 쳐보리다 자 메추리 알 잡듯이 그립을 살살 잡고 체중을 오른쪽에 두고 백스윙은 낮고 길게 쭉 내빼면서 머리는 최대한 파킹시키자. 아참 다운스윙때 왼쪽 벽을 세우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그는 스윙원칙을 수 차례 되새기며 힘차게 연습스윙을 했다.
“이대로만 친다면 300야드쯤은 가볍게 칠꺼 같은데 말이다.”
하긴 세상에 모든 것은 짝퉁보다는 진품이 좋지만 유일하게 짝퉁이 월등하게 우수한 게 있다면 바로 골프 ‘연습스윙’이 아니었던가. 히히히. 켁켁켁.
‘땅~~~.’
봉달희씨의 티 샷은 클럽을 떠났으나 “굿샷 ”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캐디 김군의 얼굴을 바로 바라보았지만 “또 산으로 갔수다~”라는 안타까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김군은 봉달희씨의 볼을 찾으러 산으로 미친 듯이 달려 올라갔고. 친구들 세 명은 어차피 찾아도 봉달희 실력에 잘해야 4온 정도 하겠지라는 생각에 그들끼리 세컨드 샷도 하고 어프로치까지 모두 끝내고 그린근처까지 왔다.
그 순간 그린에 그것도 핀 근처에 떨어지는 정체불명의 볼. 친구들 세 명은 “어떤 자식이야?”하며 옆홀을 노려보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옆홀에서 날라온 볼은 아닌 듯 싶었다.
그리고 나서 떠오른 봉달희. 그가 산에서 그린쪽으로 뛰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내 볼 온 됐냐? 우하하하하 ”
친구들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봉선생은 보란 듯이 그 홀에서 버디에 성공시켰다. 잃었던 돈들도 봉달희씨 주머니 속으로 슝슝 들어왔다.
어찌된 일일까. 과연 봉달희의 숨은 실력이란 말인가. 사실은 이러했다. 산으로 올라가서 볼을 찾으러 가는 동안 동반자들은 세컨드 샷을 하였고. 친구들은 당연히 봉달희가 못치는 걸 아니깐 산쪽은 거들떠보지도 안았다.
매번 봉달희씨가 돈을 잃는 것을 본 캐디 김군은 샷을 하려다 말고 한숨을 내쉬는 봉달희씨께 말을 꺼냈다.
“저. 제가 대신 쳐드릴까요?”
순간 봉달희씨는 깜짝 놀라며 “니 골프 칠 줄 아나”고 되물었다.
“예. 사장님보다는 쪼메 잘 칩니더. 사실 저 프로 지망생입니더….”
“그래. 그럼 니가 내 대신 한번만 쳐줘라. 나보단 낫겠지. 뭐.”
바로 그 볼은 그렇게 온 그린에 성공한 것이었다. 버디퍼팅에 성공한 봉달희씨는 김군에게 감격하며. 친구들의 눈을 피해 “고맙다 김군 내 이 은혜 잊지 않으마. 이거 받어”하면서 그 홀에서 딴 돈의 반을 뚝 떼어 김군의 주머니에 몰래 찔러주었다고 한다.
규정상 캐디는 플레이도중 고객의 클럽을 가지고 연습스윙이나 실제 샷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산속에서 몰래 샷을 해준 캐디 김군. 선의의 거짓말이 아닌 ‘선의의 행동’이라 웃음을 머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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