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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맛있는 골프

거짓말 조언이 행운의 이글로

거짓말 조언이 행운의 이글로

 


최민아씨
때는 바야흐로 3년 전 여름이다.

이 겨울에 왠 여름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지는 분들 있겠지만 그건 제 마음이다. 히히히.

3년 전이면 내가 캐디 생활을 하던 중에 가장 목이 뻣뻣이 서 있을 때다. 보통 골퍼들도 초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뛰라면 뛰고 구르라면 구르는 시기이지만 2~3년 정도 되면 골퍼로서도 목이 가장 뻣뻣한 시기다.

아무튼 나는 초심을 완전히 잃고 겸손함을 망각한 채 그린 라인 좀 외웠다고 매우 까부는 시기였다. 그러나 강적을 만났다. 사실 어떤 고객도 무섭지 않았지만 ‘느끼함’을 소유한 고객은 감당하기 힘이 들던 때였다.

그날 그분의 직업은 공무원(아주 아주 높은 공무원 )이었고. 취미이자 특기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단 남자 제외)에게 느끼한 말로 대하기였다.

이 분의 또다른 주특기는 변덕쟁이여서 채를 매우 매우 자주 바꾼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언니야. 7번 아이언 ”하고 외치면 배달의 민족. 아니 배달의 자손답게 재빨리 갖다주었다.

그런데 다시 6번 아이언 달라고 하고. 다시 달려가서 6번 아이언 가져다 주면 칠듯말듯 칠듯말듯. 카트 출발하려고 하면 또다시 7번 달라고 외쳐댔다. 아무튼 줏대라고는 하나도 없는 변덕쟁이였다.

그럭저럭 식용유 속에서 헤엄치듯이 전반 9홀을 마치고 후반 첫 번째 파5 홀에 도착했고 서드 샷 지점. 실제 거리는 190야드. 그 분께서 들고 있는 클럽은 스푼(3번 우드·앞서 이 클럽으로 세컨드 샷을 했음)이었다. 이 변덕쟁이 골퍼께서는 또 클럽을 바꿀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너무 얄밉기도 하고. 짜증도 나서 “그냥 그걸로 한번 더 쳐도 돼요 ”라고 외쳤다. 그 골퍼는 “에이. 거리가 별로 안돼 보이는데. 나 우드 4번 줘라”라고 맞받았다.

“아뇨. 그걸로 한번 더 쏘세여. 거리 아직 많이 남았어요.”
“얼마나 남았는데?”
“215야드요(내가 말하고도 좀 웃겼다. 210야드도. 220야드도 아니고 왜 하필 215야드야. ㅎㅎㅎㅎ)”아무튼 끝까지 215야드라고 우겨서 결국 채를 안바꿔 줬다.

“그래? 내 눈엔 한 190야드 정도밖에 안되어 보이는데…. 네가 정녕 이 거리가 215야드라고 하니 내 그대를 믿고 함 쳐보리다.”
나는 맘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뒤땅을 치든지. 아니면 쪼로가 나라(이보다 더 못된 캐디는 없을게다. ㅋㅋㅋ). 그 러 나 동반자들의 “굿샷~~~~” 외침이 들렸다.

앗 헉 난 몰라. 일단 그린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공이 그린 정중앙을 정확히 맞혔다. 하지만 런의 대마왕 우드로 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린 오버로 인한 OB? 난 죽었다.

분명 날 죽이려 할 것이다. 그린 뒤에는 공간도 없이 거의 낭떠러지 같은 곳이었는데 내가 어찌하여 이런 큰 실수를 저질렀단 말인가. 이 바보 멍텅구리. 그냥 4번 우드 달라고 할 때 조신하게 가져다 줄 것이지. 아~이 바보야.

이미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른 분 어프로치 클럽도 주지 않고 그분 볼의 생존 여부가 궁금했던 것이다.

미친듯이 카트를 몰고 그린쪽으로 가보았는데 볼이 예상대로 없었다. 흑흑 어쩌면 좋아. 날 잡아 먹으려 들겠지? 손님이 그린에 올라오는 동안 그린 뒤 낭떠러지로 가서 미친 듯이 볼을 찾았다.

어디 있는 거야?(ㅠㅠㅠㅠ) 청솔모가 파 놓은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그 변덕쟁이 고객님은 미친 듯이 볼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거봐라. 컸지? 너 일부러 나한테 거짓말 친거지?(날 죽일 듯 했다)” 의 광기에 사로잡힌 듯한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목 뼈가 부러지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 아니에요.”
순간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저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표정만 애써 짓고 있었고. 그분은 나를 어떻게 처벌할까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도중 “여깄다”

동반자의 외침이었다. 너무도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 볼을 찾아보던 동반자의 목소리였다. 그분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서서히 돌려보니 그는 홀(컵) 앞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렇다. 말로만 듣던 이글이라는 것이었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기분이었다. 순간 그 변덕쟁이 골퍼는 날 잡아먹을 듯 하다가 홀 안의 볼을 보고선 자신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천사표 미소(자신은 항상 착했다는 듯)를 지으며 사랑스럽게 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와~울 언니 거리 정확하네. 내가 말이야. 스푼이 정확히 맞으면 딱 215야드 나가거덩. 정말 거리 한번 정확했어. 훌륭해. 헤헤. 울 언니가 최고로 예쁘다.”딱 한 달 후 또다시 오후 첫 팀으로 그분을 따라 나갔다.

“언니는 첨 보네~. 들어온지 얼마나 되었나?”
그분은 날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칫. 최고로 예쁘다더니 다 거짓말이었군.(-_-‘‘‘) 이날은 지난달의 뼈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 그분이 원하는 클럽을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전달해 드리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분이 이글을 했던 홀에 와서 갑자기 피식피식하면서 웃는 것이었다. 동반자 분께서 “아니. 뭐 좋은 일 있나? 왜 그렇게 실실 웃나?”라고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지난달에 내가 이 홀에서 이글을 했거든. 내가 보기엔 한 180~190야드밖에 안돼 보이는데 그때 캐디 언니가 215야드라고 끝까지 채를 안바꿔 주는 거야. 그래서 한번 믿고 쳤지. 그런데 그 볼이 글쎄 백스핀을 먹고 이글이 됐지 뭔가.(ㅎㅎㅎ) 내가 남들한테 말을 안해서 그렇지. 사실 내가 스푼이 정확히 215야드 나가거든. 그때 그 언니 거리 하나는 정확하더만 215야드. 어찌 그리 정확히 알았을까?”

나는 웃음이 나오는 걸 입을 틀어막으면서 모른 척했다.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나를 한번 더 웃게 만들었다.
“근데 언니는 그때 그 언니보다 훨씬 더 예쁘다.”
ㅋㅋㅋㅋㅋ. 지금은 ‘예쁘다~’라는 말을 들으면 예의 멘트인걸 바로 알아 듣는데 그땐 나도 조금은 순진했었나 보다.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