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없는 이과장님?
얼마 전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제법 눈다운 눈이 내렸다.
이런 날에는 핫팩이 최고다. 몇 년 전 낯선 선배의 손에 이끌려 핫팩 하나를 샀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핫팩을 알기 전에는 그저 앙고라 옷이나 두둑이 입고 손에 입김 호호 불어가면서 겨울을 났다. 바보처럼….
이날 난 그야말로 주말 골퍼 네 분과 라운드를 하게 됐다. 얼추 대화 내용을 엿들어보니 네 분 모두 직장 상하 수직(?) 관계인 듯했다.
일단 제일 높으신 분은 부~장님, 나머지 세 분은 과장 및 기타 등등 님. 이 네 분 중에 부장님은 가장 인터벌이 길고 예민덩어리였다. 반면 성격은 발랄하나 볼은 완전 난장판인 과장님. 어쩌~다 한 번 필드에 나오신 과장님은 들뜬 기분에 부장님이 어드레스에 들어가면 신이 나게, 아니 눈치 없이 노래를 부르거나 말을 시키곤 했다.
부장이라는 분이 티 샷을 위해 매우 신중하게 어드레스를 취하고 있던 1번홀. 이 때 과장님 왈~.
"부장님, 오늘 눈 온댑니다."
"퍼더덕~~(-_-;;)"
부장님은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어이! 이 과장 골프 칠 때 다른 사람이 어드레스에 들어가면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알겠나! 사람이 말이야"라며 궁시렁 공시렁거렸다.
다소 침체된 분위기가 연출되나 싶었는데 한 두 홀 지나자 용감한 이 과장님은 '언제 혼이 났냐'는 듯이 또다시 기분이 상승되었다. 부장님이 퍼팅을 하려고 하는데 이 과장님이 또 말을 꺼냈다.
"부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눈이 그냥 눈이 아니고 함박눈이 온답니다."
부장님 표정은 금방이라도 과장님을 잡아먹을 듯했지만 볼 치다가 아랫사람을 폭행했다 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애써 참으시는 표정이었다.
후반 홀로 들어갔을 무렵 이 과장님의 말처럼 정말 눈이 퐁퐁, 아니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엄청 혼난 이 과장님, 부장님이 어드레스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말을 시키지 않았다. 단지 그는 노래를 불렀다.
"눈이 내~리네. 어쩌구 저쩌구~음~흠흐~."
정말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홀에서는 예민한 부장님을 위해 말도 노래도 하지 않았다.단지 스마일 하면서 그 바로 옆에서 카메라로 부장님을 열심히 찍어댔을 뿐이었다.
"찰칵찰칵 찰칵~"
부장님의 볼은 레이디 티 근처로 파닥파닥…. 어이가 없었는지 부장님은 '허허허' 웃으셨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 과장님은 내게 살곰살곰 다가와 "언니, 눈 온다. 눈 오니깐 좋지? 그치 그치"하며 능청을 떨었다.
난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리는데 뭐가 좋습니까?"라고 쏘아붙였다.
과장님 왈, "아니, 언니. 언니는 왜 눈이 싫어? 눈이 월매나 이쁜데(*^^*)"라며 반격했다.
"아니, ~군바리가 눈 좋아하는 거 봤습니까. 자연이 캐디에게 주시는 가장 큰 겨울 숙제는 바로 눈치우기입니다. 방학도 하기 전에 숙제가 떡~하니 내려 앉고 있는데 뭐가 기쁘겠사옵니까(-_-''')."
"언니는 순수하지가 않아."
매 홀 신이 나셨던 이 과장님, 내일 회사 가서 부장님께 혼나지나 않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순수함을 많이 잃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눈을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같은 존재로 밖에 안보다니, 쯧쯧쯧. 내 순수함을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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