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대한제국’ 선포 … 문화선진국 의지 국호에 담다
현재의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환구단. 고종은 독자적인 천하를 상징하는 원형 제단을 짓고 이곳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했다(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생활과 풍속·서문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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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경운궁 대안문 정면에 새로 지은 환구단에 나아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중국인들은 고대부터 자기들 나라 이름은 외자로 쓰고 인근 민족과 나라 이름은 두 자로 써왔다. 근세에 서양 열강과 접촉하면서부터는 이들 나라의 이름을 굳이 세 글자에 맞추어 미리견·영길리·불란서·노서아·오지리 등으로 썼다. 서양 열강의 침탈로 중화주의가 패퇴한 뒤에야 이들 나라 이름을 한 글자로 고쳐 불렀다.
주자학적 화이론(華夷論)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국은 당연히 외자 이름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정한 ‘한(韓)’은 우리나라 고대의 국호 중 하나였다.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자 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이 남쪽으로 내려와 ‘삼한’의 왕이 됐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대’는 당시 일본과 청국이 관용적으로 쓰던 접사였다. 기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편 문화를 상징했으니, ‘대한’의 국호에는 문화 선진국을 향한 의지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1919년 3·1운동으로 독립을 선언한 뒤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새로 건국할 나라의 국체와 국호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국체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민주공화제로 결정되어 ‘민국’으로 하였고, ‘한’을 그대로 승계했다. 1948년 제헌 헌법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하여 이때의 국호 승계를 헌법 전문에 명시했다. 3·1절을 국경일로 정한 것도 이날에 건국절의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국호뿐 아니라 국기도 대한제국의 것을 승계했고, 국가의 가사도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것 중 하나를 썼다.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재조명하자는 취지에서 대한민국관 건립 준비가 한창이다. 이참에 대한민국의 역사적 연원과 국호의 의미에 대한 관심도 환기됐으면 한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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