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연
캐디들이 화려하고 유창한 말솜씨를 발휘하지 말고 침묵하라는 것은 고문 중에서도 상고문이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못한 남자 캐디의 고통을 소개할까 한다.
화창한 날씨! 최상의 컨디션! 페어웨이에 놓여있는 솔방울까지 다 보이는 어느날.(천리안 가동중~~ㅋㅋㅋ 오늘 지대루 걸려라. 내기 완전 큰팀으로 ㅋㅋㅋ)
표를 받았다. 일단 남자 4백. 백을 싣고 백을 오픈 시켰다.
와우~일단 젊은피. 좋아~~좋아~~
내기 종류는 무엇일까? 좌익 우익? 스킨스? 라스? 조폭?
손님들 역시 긴장감 넘치는 스트로크 플레이를 선택했다.
고객님을 모시고 티박스로 이동했다. 한 고객님이 자기들만의 로컬룰을 다시 확인했다.
고객 1: "역시 오늘도 전과 동!~~"(전에 치던 방식과 동일하단 소리다)
"오늘도 역시 한홀에 캐디를 한번밖에 쓸 수 없어! 애매한 거리를 물어보던가. 그린에서 라인을 물어보던가. 다들 잘 알지! 서로 안볼때 몰래 물어보기 없기다. 그러다 걸리면 무조건 1벌타야! 알았지?"
고객 2: "지랄~ 너나 잘해. 비겁한 수 쓰지말고"
고객 3: "캐디형~ 우리 심각하니깐. 누구편도 들기 없기야. 무조건 공평하게 가는거야~~ 알았찌!"
고객 4: "자자 시작하자구~~"
나: 음~~~캐디를 한홀에 한번밖에 쓸수있다구.ㅋㅋㅋ 그럼 난 오늘 할꺼 없겠구만.
역시 캐디를 한홀에 한번밖에 쓸수없다는 룰에 따라 처음 왔음에도 불구하고 티샷 공략지점은 생략 이었다. 세컨드샷 지점에 도달하였을 때 한 고객이 나를 불렀다. "캐디형 나 이거 거리~"
나: "네~~고객님 거리는…."
고객 2: "안돼 ~~이리와서 귓속말로 해줘 쟤들이 듣잖아.ㅋㅋㅋ"
나: 아~~네~~(이런 거군. 으음~~재미있겠어)
그린에 도달했다. 역시 퍼팅 라인이 중요했던 것일까. 한사람씩 나를 쓰기 시작했다. 역시 귓속말로 모든 라인를 답해줬다.
이제 내 할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깃대를 들고 서있을때 한 고객이 다시 나를 불렀다.
고객 3 : "캐디형~"
고객 1,2,4: "야! 너 한번 다 썼잖아!"
고객 3: "아니~~공 닦아달라고~~~"
나: 아~~네~~~
가서 공을 닦아 주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랬다. 그것은 아무나 쓸수 없다는 내공 7할에 달하는 복화술을 구사하는 것이었다.(입모양을 내지 않고 살짝 입을 벌린 상태에서 모든 말을 전하는 초식)
고객 3: "헝~이거 웬꼬기 노킁거 마찌(얼추 추리해본 결과 '형~이거 왼쪽이 높은거 맞지?' 대충 이렇게 추정됐다)
할수없이 나도 있는 내공을 끌어내 7할에 달하는 복화술을 구사했다.
나: "에~웬꼬기 노킁거 마쓰이다"
다음홀에 이동했다. 역시나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4분 모두 복화술에 달인들이었다.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다.
골프 연습은 안하고 전부 복화술만 배웠나보다.-_-
차라리 그냥 다들 편하게 말하면 될 것을 뭐하러 눈치 봐가면서 복화술을 쓰는지 모르겠다. '왜~~괜히 나만 피곤하게 만드냐고~~~'
거리가 140미터 남았다고 속시원히 말도 못하고 그린에서 라이가 왼쪽이 높다고 속시원히 말도 못하고 마치 무슨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냐고. 제발 자유롭게 말좀하자고요~~~
이 독한 고객들은 복화술은 물론 자신들만의 별도의 비장의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4번 고객은 투온을 시키곤 재빨리 그린으로 가서 동전 마크를 자기 볼보다 앞으로 던져놓고 공을 싹 집고 앞에다 던진 마크에 공을 놓는 일명 '동전치기의 달인'이었다.
1번 고객은 강심장에 동물적인 동작을 이용한 '손으로 퍼팅하기의 달인'이었다.
1m 퍼팅을 남겨놓고 다른 사람들은 홀아웃을 하고 카트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땡'하는 소리가 나면 들어간 것이고 소리가 안나면 안들어갔을거라 생각하고 뒤돌아 가고 있을때
우리의 1번 고객은 간이 얼마나 부으셨는지 퍼터하는 척하다 공을 집어서 재빨리 홀에 던져 넣는 것이다. '땡'하고 소리가 났을때 뒤돌아서 가던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면 고객1님은 공을 퍼터로 집어 넣은 듯이 허리를 숙여 볼을 집는다.
2번 고객님은 숲에만 들어가시면 알까는거는 기본이다. 하지만 아직 양심의 내공을 버리지 못했다. 이왕 알까는것 나무가 가리지 않는 곳에서 알을 까야하는데 자꾸 엉뚱한데다 알을 까놓고는 클럽을 바꿔 달라고 한다. 보다못한 내가 그냥 고객님 공을 발로 차서 좋은 라이에 놔드렸다.
그러자 2번 고객님이 확~! 째려보고 뒤돌아 섰다. 순간 긴장한 나에게 던지는 한마디 "혀엉~ 고마워 ^^"
정말 굉장한 손님들이다. 캐디생활 5년만에 이런 경지에 오르신 분들을 만나게 될줄야. 아무튼 이날 복화술 써주느라 턱에 쥐나는줄 알았다.
'골프 > 맛있는 골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륜, 죄짓고는 못사는 세상 (0) | 2007.11.23 |
---|---|
캐디가 이렇게 힘든줄 몰랐어요 (0) | 2007.11.14 |
여성 골퍼에게 봉변당한 男 캐티 (0) | 2007.10.29 |
무늬만 프로, 매너-실력 모두 아마추어 (0) | 2007.10.22 |
혹독한 신고식, 유쾌한 몰래카 (0) | 2007.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