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볼찾다 밟아 버린 볼
그날은 우리 골프클럽에서 유명하신 회원3분과 나갔다. 몇번 클럽챔피언을 하신 A회원님. 운영 위원회 위원이신 B회원님과 C회원님. 다른때의 라운드와는 사뭇 다르게 비장한 각오로 무장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라운드에 임했다.
유독 나하고는 인연이 없었던 분들이었기에 나름대로 긴장도 했다.
초대 챔피언 A회원님이 티박스에서 허리를 굽혀 무언가 열심히 줍기 시작했다. 그것은 티박스에 난 잡초를 뽑는 것이였다.
그러자 B위원도 C위원도 허리를 굽히기 시작했다. B위원이 나에게 다가와 잡초 6뿌리를 건내며 "얌마~ 어르신들 잡초 뽑는데 거 서서 머해~ 우린 합이 6개야 넌 최소 7개는 뽑아와라"
나: "아~~네~~"(챔피언 티에서 골드, 화이트, 레이디티까지 샅샅이 뒤져서 잡초를 뽑았다). 워낙 골프장 코스를 훤히 꿰뚫고 있는 분들이시라 공략이나 거리나 클럽이나 내가 해줄게 없는 분들이였다.
완전 '120% 캐디 비의존' 손님들이었다.
난 세컨지점에 나가서 서브는 커녕 마냥 잡초뽑고 나뭇가지 치우고 쓰러진 오비말뚝 세우고 거리목 점검하고….(나중에 안건데 년차 많은사람들하고 나가면 이것저것 농담도하고 많은 야기를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난 짬밥이 않되었던것이다.ㅋㅋㅋ)
평온하던 라운드 분위기는 4번 파3홀에서 깨졌다.
B위원 '나이스 온'
C위원 역시 '나이스 온'
어째 A챔피언님 볼은 살짝 슬라이스가 나더니 살짝 러프속으로 들어갔다.
A회원님 "어어 머여~~ 얘~내볼 어디 떨어졌는지 봤니?"
나: "네~~밖으로 나가진 않으셨어요. 바위 옆 러프에서 찾으면 있을것 같습니다.
우린 나가서 러프를 헤져으며 볼을 찾았다.
A회원님: "얘~ 봤다면서 어디쯤 떨어졌는데? 왜 볼이 없어!"
B위원: "이거~ 잠정구 않쳤으니 로스트볼 처리랑 똑 같네. 허~허~허~ 이번홀 배판인데. ㅋㅋㅋ"
A회원님: "어허~ 그런 소리 하들말어 분명 있어 여기 어디 찾아봐 더 좀~~~"
A회원님: "얘야~ 내볼 어딨니? 어? 어디써?"
나: "예~~~분명 이근처로 떨어지는 걸 봤는데"
5분여가량 러프에서 볼을 찾았다. 그러던 도중 왠지 내 발밑에 볼만한 크기의 물질이 묵직하게 밟혔다.
나: (이 느낌! 이거 혹시 볼인가? 볼을 찾고 있는 회원 눈을 피해 몰래 밟밑에 물질을 확인하려던 찰라에 B위원과 눈이 마주쳤다)
볼을 찾다 멈춰 서있는 내 표정을 보고 간파했던 것이였을까.
B위원: "엇! 이놈 이거 볼 밟았나보다. 그치~ 너 발밑에 볼있지?"
나: 뜨끔~(그대로 난 얼어버렸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꺼지는 듯한 멍한 느낌)
A회원님: "정말 네 발밑에 내 볼 있어? 비켜봐~"
C위원: "그대로 서있는거 보니 진짜 있나보네. 뭐 찾긴 찾아줬네 ㅋㅋㅋ"
슬며시 발을 들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건 A회원님의 볼이 맞았다. A챔피언 볼은 내가 밟고 있었던 탓에 공이 3분의 1가량 흙속에 박혀있었다. ㅡ,.ㅡ
A회원님: "으악~이게 머야. 이건 어떻게 처리해야하는 거야~~"
B위원: "아하하~~뭘 어떻게 해. 그냥 이대로 쳐야지~ 룰도 몰라?"
C위원: "이거 뭐, 우리가 구찌 안넣어도 캐디형이 한껀 해주네 오! 예스~~쌩유~"
A회원님의 클럽은 굴삭기가 되어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자리에서 땅파다가 결국 '양파'를 심었다.
B위원은 버디, C위원은 파. A회원님의 지갑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숏홀 아웃을 하면서 A챔피언이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이놈아~내가 너한테 거리를 불러달라 했냐. 그린 라인을 봐달라고 했냐. 내가 뭐 귀찮케 했어? 왜 남에 볼은 밟아가지고 어떡할꺼야?"
나: (열심히 찾는다고 찾은건데 아흑~~)
B위원: "야야 ~삼촌아(배춧잎 3장을 건내며)자자 니 몫이다! 또 부탁한다 잉~~
나: 허걱~~(A회원님은 날 째려보고 있었다)
C위원: "이~ 삼촌이 과묵한게 한껀 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 이구만 어허허~~우린 한배를 탄거야"
A챔피언:(계속 날 째려보며) 찌릿~~ 얘~ 너 이름이 뭐니?
나: "김xx 입니다"(이름은 왜요~ 설마 이런일로 컴플레인? 아니 되옵니다~~지정 캐디는 커녕 지적캐디로 생활 마감하게 생겼네. 컴플레인은 이제 그만~~)
B위원: "아니 죄없는 애 이름은 왜물어? 겁주는거야~ 챔피언도 땅파다 '양파'깔수 있는거지 뭐"
C위원: "삼촌아, 걱정마~ 내가 컴플레인걸면 막아줄께! 겁먹지 말고~~알지 ㅋㅋㅋ"
회원님들은 농담 섞인 말투로 서로 이야기했지만 난 정말 간담이 서늘한게 오싹한 기분에 라운드를 진행해야만 했다.
결국 그이후 남은 홀도 A회원님의 지갑은 계속 피를 토하며 운명을 다 하셨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땐 악몽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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