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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맛있는 골프

복수라는 이름 앞에 사라진 페어플레이

복수라는 이름 앞에 사라진 페어플레이

 

따뜻한 여름의 어느날.

유난히 수첩에 세컨드 샷을 해도 사용 클럽을 적고, 파 3홀에서 사용클럽 및 핀위치까지 적고, 퍼팅을 해도 수첩에 그린 라인까지 그리는 분(가명 김깐깐)이 계셨었다.

나는 속으로 "뭐야 우리 회사에서 있는 대회는 몇일전에 다 끝났는데 대체 왜 적는거야?"하며 의아해했다.

김깐깐님은 이것 저것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시시콜콜 내게 코스에 관한 모든것을 물어보시며 귀담아 들으셨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처럼 비장함이 넘쳐 흘렀다.

내게는 아주 깍듯한 극존칭을 쓰면서 질문했지만 한번이라도 틀릴시 어찌나 심하게 노려보시던지…. 암튼 프로님과 라운드 할때보다 더 떨리고 가슴 졸이는 라운드였었다.

몇일후.

그분은 누가봐도 싸움닭처럼 보이는 고객 3분과 내 앞팀으로 나타나셨다 .

"어! 또 오셨네요~~" 라고 가식적인 미소를 띄우며 말하려고 하다가 그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제발 부탁이건데 아는척 하지 말아다오~~~'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모른척 하며 앞팀언니에게 그분에 대한 간단한 정보만 드렸다.

예상했던대로 명랑골프는 아닌듯 하였다.

내기는 김깐깐님과 어느 덩치 좋으신 두분하고만 하는거였다. 내기 규모는 타당 10만원.

그러나 이것은 1대1의 싸움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1대1의 싸움이지만 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되고 조작된 3대1의 싸움이었다.

김깐깐님은 몇일전 '노력한 댓가'를 보는 듯 선전하고 계셨다. 하지만 김깐깐님의 선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깐깐님의 티샷한 볼이 OB말뚝 근처로 날아갔고 분명 앞팀 언니는 볼이 살아있다고 무전을 해왔다. 평소에 김깐깐님과 무지 친하게 지낸것처럼 보이는 한분이 배가 아프다며 티샷을 하고 미리 출발을 한 것.

분명 살아있을꺼라 생각했던 김깐깐님의 볼은 가서 보니 OB말뚝을 살짝 넘어가 있었다. 김깐깐님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분이 미리가서 OB라인 밖으로 아주 살짝 던져 놓은 것(너무 멀리 던져놓으면 눈치챌까봐 아주 살짝 오비라인 밖으로 밀었나보다).

그리고 마치 산에서 볼일을 본것처럼 조금 늦게 나타나 하시는 말씀 "뭐야 깐깐이 볼 살았는줄 알았는데 OB였어?"
 "언니야 이거 살은거 아니야? 대충 이야기 하지말고 정확히 보구 판단해. 언니의 말 한마디에 몇십만원이 왔다 갔다 하니까? 알겠어?"

결국 살아있는 볼도 OB가 되어야만 했다.

또한 한분이 티샷하고 김깐깐님에게 말을 시키며 정신 집중이 안되게 할때 다른 한분은 조금 빨리 걸어가면서 시인 김소월님의 '진달래 꽃'처럼 페어웨이에 놓인 김깐깐님의 볼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거나 아님 공포의 토우킥으로 페어웨이에 있는 볼을 디봇자리로 살짝 밀어 넣었다.

그늘집에서 만난 앞팀 캐디 언니왈~

"와~~~~분위기 장난 아니야, 3대1로 싸우는 분위기이다"

실은 이러하였다. 매번 김깐깐님은 철저한 준비정신과 정교한 실력으로 내기판에서 항상 '그레이트 위너'가 됐다. 항상 돈을 잃었던 동반자 두분은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하지만 골프가 하루 아침에 실력이 급상승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 먹은 대로 안되는 것. 결국 두분은 킬러를 고용한 뒤 작정하고 김깐깐님을 골탕먹이기로 마음 먹었다. 장타자에 내기꾼이라고 소문난 친구를 섭외하여 김깐깐님의 돈을 딴 뒤 3등분 하기로 한것이었다.

'뭐랄까…. 복수의 날이라고나 할까?'

결국 김깐깐님은 세분의 합동작전에 돈을 엄청 잃고 쓸쓸히 고개를 떨구며 들어갔다. 물론 다른 두분은 김깐깐님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지만 얼굴 저편에는 승리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직접 덤비기에는 실력이 부족한터라 나름대로 짜낸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정말 이런식으로 복수하면 마음이 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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