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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당국, 환율방어 손 놓았나

외환당국, 환율방어 손 놓았나

 

원.달러 환율이 거침없는 오름세를 보이면서 1,070원 선마저 훌쩍 뛰어넘었다. 한 달간 70원 가까이 폭등한 환율 흐름은 지난 달 초 대규모 개입을 단행한 외환당국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환율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달러화 강세와 세계적 신용경색 등 대외 여건은 물론 무역수지 적자와 외국인의 증시 이탈 등으로 대내 수급 역시 환율 상승에 우호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물가안정을 위한 외환시장 개입 강도가 약해져 환율이 1,100원대로 올라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환율이 일시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개입은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환율 한 달새 66원 폭등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오전 10시55분 현재 지난 주말보다 달러당 10.20원 급등한 1,072.70원에 거래되고 있다.

환율이 현 수준으로 거래를 마치면 2004년 11월17일의 1,081.40원 이후 3년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지난 달 28일 1,006.00원에 비해서는 상승폭이 66.70원에 달하고 있다.

지난 달 4일 1,050원대로 급등했던 환율은 외환당국의 고강도 개입으로 같은 달 9일 장중 1,000원 아래로 떨어진 뒤 한동안 1,000~1,020원 범위의 박스권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달러화가 강세로 전환하면서 원화는 각국 통화가 급격한 약세로 돌아서고 있다. 달러.유로 환율은 지난 달 15일 1.60달러 선을 고점으로 급락세를 보이면서 1.47달러 선까지 급락(유로화 약세)했고 엔.달러 환율은 한 달 새 6엔 이상 급등(엔화 약세)하면서 110엔대로 올라섰다.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도 달러화 수요를 확산시키는 요인이다. 작년 8월 말 이후 1년 간 41조 4천억 원 가량 주식을 매도한 외국인들은 재투자를 위해 자금을 보유하던 종전 행태와 달리 최근에는 주식을 매도하는 즉시 달러화로 환전해 본국으로 송금하고 있다.

◇ 당국 손 놓았나

지난 21일 1,050원대로 올라선 환율이 1,060원과 1,070원 선을 차례로 돌파했지만 외환당국은 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있다.

당국은 최근 환율이 급등할 경우 달러화 매도를 통한 속도조절에 나서고는 있지만 장중 환율을 30원 가량 끌어내렸던 지난 달 9일과 같은 고강도 개입은 하지않고 있다. 이날 환율이 10원 이상 급등했지만 당국의 개입 규모는 5억 달러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잦은 구두개입으로 시장의 비판을 받았던 당국은 최근에는 환율과 관련한 발언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한 만큼 물가 안정을 위한 외환시장 개입을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달러화 강세와 무역수지 적자 등 대내외 여건이 환율 상승에 우호적인 상황이어서 무리한 개입에 나섰다가 투기세력의 역공을 받을 수 있는 점도 당국의 태도 변화 요인으로 꼽았다. 무역수지는 지난 달 이후 이달 20일까지 80억 달러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하반기 38억 달러 가량 흑자를 낼 것이라는 정부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국회의 국정감사를 앞두고 적극적인 시장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것을 정부가 극도로 꺼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9월 외화 유동성 위기설이 돌고 있는 점을 감안해 당국이 실탄을 비축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최근 환율 상승세가 워낙 강해 개입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당국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며 "현실화 가능성은 낮지만 9월 외화유동성 위기설이 도는 점도 외환보유액을 동원한 개입을 자제하는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추가 상승 불가피"

전문가들은 환율이 이미 상승 탄력을 받은 만큼 당분간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환율이 개장 후 1시간 동안 10원 이상 급등하는 등 심리적 쏠림이 나타나고 있지만 당국은 시장개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수요 우위에 의해 균형 환율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상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 과정에서 오버슈팅(이상과열) 되는 측면이 있다면 속도 조절의 필요성이 있겠지만 변동환율 제도에서 일정 정도의 변동성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신 실장은 "기본적으로 미국 금융시장 불안 외에는 경상수지가 가장 큰 변수"라며 "이번주 후반 발표되는 경상수지가 흑자를 보인다면 환율이 조금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환율이 수급 때문에 계속 상승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1,100원도 넘을 수 있다"며 "정부로서도 어느 정도는 시장 환율을 지켜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보이고 시장 자체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는 수준에서 조정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추석 명절을 앞두고 물가 불안이 우려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얼마나 환율 상승을 감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이규복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 가격이라는 것은 변동성이 있는 것"이라며 "현재 환율 상승이 수급에 의한 것인지, 왜곡 요인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