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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우리아이들

영어 하루 1시간씩 1년만 듣고 말해 보자

하루 1시간씩 1년만 듣고 말해 보자

스웨덴ㆍ싱가포르보다 우리가 영어 못하는 건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기 때문

 

 

 

영어라는 말은 왜 배우기 어려운 것일까? 영어는 우리에게 끝내 뛰어넘기 어려운 벽일까?

문제는 영어에 접근하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영어는 글이기 이전에 말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듣고 말할 수 있지만, 인간이라고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 두 능력에 대해 혼동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수영장에서 수영 배우기를 예로 들어보겠다. 사람들이 어느 날 수영을 배우러 수영장에 갔다. 강사는 수영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수영에 관한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모두들 수영을 배울 기대에 부풀어 있다. 강사는 사람들을 물가에 앉혀놓고 앞으로 6개월 동안 어떻게 수영을 가르칠 것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수영의 종류, 수영하는 방법과 몸이 물에 뜨는 원리, 수영장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이상하게도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물에 들어갈 기회를 주지 않는다. 수영하는 방법과 원리에 대해서만 시간을 넘겨 설명할 뿐 물속에 들여보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지루한 수영학(學) 강의는 계속된다.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마지막 달에는 심지어 운동생리학은 물론 물과 몸의 마찰 및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리학적인 원리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수강생들은 도대체 수영을 배우러 온 것인지, 수영학을 배우러 온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자, 이렇게 6개월을 보낸 강습생들은 과연 수영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가 영어를 가르치고 공부하는 방식이다. 비록 수많은 영어 단어와 문법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영어를 듣고 말해본 경험은 거의 없다. 수영을 배우러 가서 물속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것이다. 문법을 외우고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풀고 영어의 구조를 이해하는 모든 행위는 수영학이나 수영의 원리를 배우는 것과 같다. 그래놓고서 수영 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백년하청이다.

영어를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은 몸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스키를 타고 싶으면 직접 눈 덮인 설원을 내려와 보아야 한다. 스키 강사가 아니라면 스키를 타는 법칙이나 원리는 중요하지 않다.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영어의 구조나 문법은 중요하지 않다. 영어라는 언어는 몸으로 부딪쳐서 듣고 말해 보아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듯이, 줄넘기를 배우듯이, 운전을 배우듯이.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지만 중국어를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중국어는 중인인 역관(譯官)이나 중국을 왕래하며 중국어를 사용한 상인들이 더 잘했다.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영어나 수영은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번 몸으로 체득하면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면 영어를 배우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자전거를 배우는 데 일주일 정도면 충분하고, 운전을 배우는 데 일 년이면 되겠지만 영어는 도대체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1만1680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제는 영어를 제대로 능숙하게 하기를 원할 때 필요한 시간이다. 이 정도 시간은 대개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울 때 필요한 시간이다. 물론 순수하게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면서 배운 시간이다. 이 시간은 4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8시간 동안 영어를 듣고 말했을 때 채울 수 있는 양이다. 하루 4시간이면 8년, 하루 2시간이면 16년, 하루 1시간이면 족히 32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엄청난 시간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중ㆍ고교 시절 약 500시간의 영어교육을 받았다. 물론 영어 수업시간에 영어라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지난 한 달 동안 영어를 단 1시간이라도 사용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지난 일 년 동안은 어땠는지 묻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영어 환경이다. 우리는 영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아도 쓸 이유가 별로 없다. 영어를 사용하고 배우고자 한다면 인터넷이나 다른 공간을 통해 얼마든지 읽고 들을 수 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 이것이 필리핀ㆍ싱가포르·스웨덴ㆍ노르웨이ㆍ스위스ㆍ덴마크 같은 국가보다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이유다. 특별한 노하우나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삶의 곳곳에서 영어에 노출되고 영어를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TOEFL이나 TOEIC과 같은 영어 시험에 집착하지 말고 제대로 영어를 배워보기 바란다. 하루에 단 1시간이라도 영어를 귀로 들어보고 입으로 말해보기 바란다. 그렇게 적어도 1년은 지속해보기 바란다. 그래 봐야 겨우 365시간이겠지만 최소한 그 정도는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뒤에야 영어가 왜 안 되는지, 영어가 왜 어려운지에 대해 논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병민(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