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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얌체족 … 음주단속 않는 틈타 취중 운전 늘었다

메르스 얌체족 … 음주단속 않는 틈타 취중 운전 늘었다

감염 우려에 검문식 단속 중단 … 대리기사들 “손님 60% 줄어”
사기범 “감염 의심” 핑계 소환 불응 … 경찰, 확인하니 병원 간 적도 없어
약국 “마스크 몇 장 안 남았는데…” 3500원짜리 8000원에 바가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인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이를 악용해 불법·탈법을 저지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경찰이 감염이 우려되는 기존 검문 방식 음주단속을 중단하자 음주운전이 늘어나는 추세다. 약국은 구하기 힘들어진 마스크를 고가에 판매해 폭리를 취한다. 사기 피의자가 “메르스에 걸렸다”는 핑계로 경찰 출석을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찰청은 지난 3일 “검문 방식 음주단속을 자제하고 음주운전으로 명백히 의심되는 운전자에 대해서만 음주측정을 실시하라”는 내용의 긴급 업무지시를 각 지방청에 하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사고가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았다”면서도 “술을 조금 마신 후 대리운전을 부를까 말까 고민하던 사람들 일부가 안이한 판단으로 직접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경찰의 조치가 결과적으로 음주운전을 야기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직장인 김모(27)씨는 “메르스 파문 이후 주변 동료 중에서 만취한 상태가 아니면 대리기사를 부르지 않고 스스로 운전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엄모(28)씨도 “음주단속을 해도 술을 마시면 상습적으로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경찰이 왜 단속을 안 한다는 발표를 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대리운전 업계에서는 경찰의 음주단속 중단 후 손님이 크게 줄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9일 오전 1시쯤 서울 강남역 인근에 모여 있는 대리기사는 6명 남짓이었다. 평소 대리기사들로 붐비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대리기사 권모(38)씨는 “보통 하루에 3~4건 이상 대리를 하지만 요즘은 2건 하면 많이 하는 것”이라며 “경기도 쪽은 60% 이상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업체 장모(59) 대표는 “경찰이 너무 쉽게 가는 것 아니냐. 부작용이 심하다. 30% 이상 매출이 줄었다”고 주장했다. 김종용 대리운전기사협회 대표도 “‘음주운전을 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경찰의 행정편의주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일부 약국은 마스크 품귀현상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

 손님이 식약처 인증마크인 ‘kf’가 붙은 마스크를 찾으면 품절됐다고 한 뒤 “사실 몇 장 남지 않았다”며 가격을 2~3배 뻥튀기해 파는 수법이다. 9일 서울 성북동 주택가 인근의 한 약국에서 기자가 직접 마스크를 구매해 봤다. 약사는 “황사방역용인 kf94 마스크가 딱 10장 남았다. 강남에 가면 1만원씩 받는데 8000원에 판다”며 내놓았다. 마스크 겉봉엔 ‘판매가격 3500원’ 딱지가 버젓이 붙어 있었다.

 본지가 서울 종로와 성북동, 명륜동, 중계동 인근 약국 24곳을 조사한 결과 4곳이 이런 식으로 kf 인증 마스크를 기존 판매가격(2500~4000원)보다 두 배까지 비싸게 팔고 있었다. 이에 대해 한 약사는 “공장도 가격이 1200원에서 1800원까지 올랐기 때문에 판매가도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범죄 피의자들이 메르스 공포를 악용해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경남 진주경찰서가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A씨(27)에게 지난 2일 출석을 요구했다. 그러자 A씨가 “메르스 검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경찰에 출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경찰이 질병관리본부 등에 검진 사실을 확인한 결과 A씨는 병원을 방문한 적도 없었다. 경찰이 다시 출석을 요구했지만 A씨는 “몸이 너무 아파 혼수상태에 있던 나를 친구들이 병원으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메르스 검진을 받았다”며 “정확히 어느 병원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빙성이 낮지만 만에 하나 진짜 메르스 환자일 경우 수사관과 주변 민원인들 모두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강제 조사는 어렵다”며 “메르스 공포를 악용해 수사를 지연시키는 일들이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영익·위성욱·조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