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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중” SOS 55분 만에 … 얼음장 바다 ‘성탄 연휴의 기적’

해경 팀워크 빛난 화물선 구조작전

 

 

26일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 해상에서 침몰한 목포 선적 495t급 화물선 항로페리2호의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한 목포해경이 고무보트(단정) 2척을 내려 승선원 15명 전원을 구조하고 있다. [목포해경 제공]

 


“메이데이, 메이데이…. 제발 살려 주세요. 선체가 기울면서 침몰하고 있습니다.”

 26일 오전 9시15분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감시하기 위해 전남 신안군 흑산도 해상을 운항 중이던 목포해경 소속 3009경비함의 근거리 무전망(VHF)으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산면 만재도 해역에 있는 목포선적 495t 급 화물선 항로페리2호(선장 김상용·60)의 구조통신이었다.

  3009함 김문홍(52·경정) 함장은 선장 김씨에게 “배에 탄 전원에게 구명조끼를 입히세요. 40㎞ 떨어져 있지만 전속력으로 갈 테니 그때까지만 버텨 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김 함장은 사고 해역인 흑산면 만재도 남방 15㎞ 해상을 향해 29노트(54㎞)의 전속력으로 달릴 것을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살을 에는 듯한 초속 20여m의 강풍과 4m 이상의 높은 파도로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이었다. 경비함이 전속력으로 4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을 때 항로페리2호는 50도쯤 기울어 있었다.

 사고 화물선에는 방학을 했지만 기상 악화로 발이 묶여 있던 가거도 중학교 교사 6명, 학생 1명, 화물차 기사 4명, 선원 4명이 타고 있었다.

항로페리2호가 가거도항을 출항한 것은 이날 오전 6시20분. 서남해의 절해고도로 절경이 빼어나 관광객이 몰리는 가거도에서 목포항까지 직선거리는 165㎞로 쾌속선으로 4시간 이상 걸린다. 그러나 출항한 지 3시간이 채 되지 않아 삼각파도를 맞고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갑판과 선실에서 “살려 달라”고 소리지르던 승선원들은 경비함이 도착할 무렵 배가 기울어져 7명이 먼저 바다에 빠졌다. 바닷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들의 생명은 분초를 다투는 풍전등화 상태였다. 경비정은 3t짜리 고속보트(단정) 2척을 즉시 내려 바닷물에 빠진 승선원 구조에 나섰다. 높은 파도로 단정도 가랑잎 같은 신세였다. 휩쓸려 떠내려가는 승선원들의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된 해상에서 목숨을 건 구조작전이 진행됐다. 조금만 지체하면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장담할 수 없어 신속한 구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신속하게 해상 표류 승객을 구한 해양경찰은 뒤집힌 배 위에서 손을 흔들며 구조 요청을 한 나머지 8명도 무사히 구조해 단정과 경비함으로 옮겨 태웠다. 이후 화물선은 가라앉았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구조된 승선원들이 저체온증에 시달리자 해경 경찰관들은 함 내에 있는 직원용 찜질방으로 옮겨 체온을 유지했다. 국내 첫 최신예 하이브리드함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목숨을 건 목포해경 3009함의 인명 구조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조금만 늦었다면….” 경비함의 경찰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 도착해 구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악천후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얼음보다 차가운 바닷물에 빠졌을 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분만 늦게 구조됐다면 다시 가족을 보기 힘들었을 겁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강원규(35·충남 아산시)씨는 “목포해경 경비함(3009함)이 생명의 은인이었다”고 거듭 말했다. 강씨는 “느슨하게 묶여 있던 화물차 4대의 고정장치가 한꺼번에 풀려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한 것 같다”고 사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함장은 “중국어선 나포작전으로 다져진 팀워크가 빛을 발했다. 구조 요청을 받고 현장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 구조하기까지 전 직원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작전이 끝나고 나니 그 악천후 속에서 어떻게 일을 마쳤는지 모를 정도로 땀이 흥건했다”고 회상했다.

 3009함은 이날 오후 구조한 승객을 목포항으로 이송했다. 저체온증 증세를 보인 승객들은 목포 한국병원, 중앙병원, 기독병원에 분산 치료 중이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3009함 직원들은 올해 중국어선 최다나포선박으로 받은 포상금으로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사 전달해 화제가 됐다.

목포=유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