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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부부성인

한 남자에게 헌신하려는 女, 되도록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지려는 男

(29) 동상이몽 남여

 

 

일러스트=강일구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게 당당할 수가!” 예전이라면 조강지처가 현장을 급습하여 남편이 바람피우는 상대의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고 살림살이 등을 깨부수는 등 망신을 주고 울고 불고 하였지만 요즘에는 어쩐지 역전되는 양상이다. 남편에게는 차마 아무 말 못하고 상대 여성에게만 화풀이를 해대는 것은 자신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거나 여성미를 덜 풍기거나 젊지 않다는 것이 마치 스스로의 잘못처럼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여성들은 아직도 ‘착하다’. 하지만 남편의 외도 여성은 과거처럼 본처에게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사랑한다면 남자를 놔줘야하는 것 아니냐, 도대체 어떻게 했는데 남편관리도 못하고 밖으로 나돌아다니게 하느냐’는 투로 이혼을 요구하며 자꾸 전화하지도 말고, 남편이지만 사생활을 존중하라고 조언까지 한다고 한다.

사랑에 대해 대체로 여성들은 아직도 자신이 선택한 혹은 잠자리를 함께한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헌신하는경향이 있고 그것은 결혼으로 완성된다는 말도 여성에 관한한 맞는말인것 같다. 그의 아이를낳고 빨래를 하고 집을 청소하고 요리를하며 기뻐하는 것은 어쩌면 모든 여성들에게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 행복의 모습이다. 자신이 남성에게 헌신하듯 남성 역시 그러하리라는 ‘착각’은 간혹 여성에게 큰 좌절과 실망을 안겨다 줄 수 있다. 특히 열심히 외조를 받는다 생각하고 자신의 일을 성취한 중년의 커리어우먼에게서는 더욱 충격이 크다하겠다. 업무상 만남들, 밤늦도록 이어지는 술자리들… 이런 모든 것도 남편이 다 이해해주었다고 했다. 심지어 몇 년간 이어진 그의 부정을 그녀가 알았을 때도, 그는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한다며 안아주며 다독여주었고, 잘 때까지 옆에 있어 주는 다정한 남편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외도를 멈추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관계가 자연스레 인정이 되는 묘한 구도 속에 숨막힐듯 답답한 그녀는 죽고 싶어 한강으로 달려가기도 했다면서 자신의 소외감과 좌절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남편인 그를 정말로 많이 아직도 여전히 사랑한다고 했다.

대개의 남자들은 짧은 기간의 부담감 없는 관계나 섹스를 좋아한다. 어쩌면 하룻밤을 함께 할 여성 혹은 단지 섹스의 대상이 누구든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성욕을 저하시킬만한 추녀가 아니거나 계속 자신에게 전화하며 만나달라고 보채는 속칭 ‘사이코’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별로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도 않고 혹은 사회적 압박이나 제약이 없는 한 어떤 책임도 지기 싫어하는 것이 일반적인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하룻밤의 관계라도 앞으로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 후보에 등록시킨다. 때로는 기꺼이 자신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인생을 걸 각오도 되어있는 것이다.

남성에 관한한 결혼이라는 장치에서 보호받는 순정파 배우자나 혹은 유부남과의 새로운 가정을 꿈꾸며 기꺼이 낙태를 감행하는 불륜녀나 산부인과 여의사가 보기에는 모두 착하다 못해 너무 미련스러운 경향이 있기도 하다.

그는 또 어느 순간 그 둘도 아닌 자신의 마음에 새로운 설레임과 자극을 주는 또 다른 여성에게 훌쩍 가버리고 말텐데 말이다. 언제든 그럴 준비가 되어있는 그는 ‘사랑한다’는 과거의 맹세 따위는 잊어버린지 오래다. 여성이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놓고 시간날 때마다 꺼내보며 행복해하는 낡은 그 마법의 단어 말이다. 정작 내뱉은 당사자에게는 오래된 일기장따위 별의미도 없는 것인데 말이다. 그녀는 과거의 선택에, 그는 현재에 집중한다.

만약 여성이 용기가 있어, 과거 왕자님의 가면을 한풀 벗겨버리면 추악한 얼굴의 이기적이고 교활한 중년 남성의 얼굴이 똑바로 보일 수도 있다. 싸우고 소리지를 수도 없게 ‘여성미와 죄책감’이라는 교묘한 내면화를 이용하여 착한 아내를 다루는 너무도 점잖은 언행의 그들 말이다.

테레사여성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