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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그때오늘-중앙일보

125년 전 최첨단 양복 패션 ‘미국 따라 배우기’ 시작되다

125년 전 최첨단 양복 패션 ‘미국 따라 배우기’ 시작되다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산업과 교육의 경쟁력에 대해 낯간지러운 호평을 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만드는 신형 하이브리드 자동차에는 한국산 배터리가 들어간다.” “한국 아이들이 교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지난 2월 24일 의회 합동연설과 3월 10일 교육비전 연설 때 한 말이다. 이제 우리가 미국의 벤치마킹 대상이라니, 미국의 제도와 경험을 따라 배우려 했던 한 세기 전 이 땅의 선각들이 들으면 놀라 뒤로 자빠질 일이다.

1883년 최초의 미국 시찰단 보빙사(報聘使) 일행은 난생 처음 마주친 문명개화의 신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나는 암흑에서 태어나 광명 속으로 들어가 보았고 이제 다시 암흑으로 되돌아왔다.” 사절을 이끈 민영익이 남긴 소감이다. “기기(機器)의 제조 및 선박·기차·우편·전보 등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일은 교육이다. 미국의 교육방법을 본떠 인재를 길러 백방으로 대응하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니 이를 본받아야만 한다.” 동행했던 홍영식도 미국의 산업과 교육에서 조국의 살길을 찾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더 이상 멸시의 대상인 오랑캐가 아니라 ‘과학과 문명의 화신’이자 따라 배워야 할 ‘유의미한 타자’로 다가섰다. 보빙사 종사관으로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롱부츠에 단추 4개짜리 더블브레스트 양복을 사 입고 온 서광범의 모습은 이를 웅변한다. 한복 입은 이는 김옥균이다. 1884년 촬영한 사진이다.

한 세기 전 시대적 과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막고 근대 국민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산업을 키우고 인재를 길러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한 선각들의 방법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이란 외세에 기대고 무력에 호소하는 유혈 쿠데타 갑신정변을 일으켜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려 한 그들은 근대의 문턱에서 실패의 역사를 쓰고 말았다.

그들은 내심 ‘약자를 보호하는 수호천사’로 본 미국의 도움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때 미국은 이들이 내민 손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인이 엔고를 이용해 제주도를 사들이겠다는 망언을 하고, 망언 제조기로 알려진 정치인이 일본의 총리가 된 오늘날, 그때의 슬픈 역사를 우리의 진로를 비추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