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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자유공간

3살때 버려졌던 그녀 이젠 NY타임스가 `주목`

3살때 버려졌던 그녀 이젠 NY타임스가 `주목`

 

 

세살 때 서울의 어느 시장통에 버려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미국 뉴올리언즈의 한 가정에 입양된 아이는 새로운 가족의 보살핌 속에 자라나 영어와 프랑스어, 스웨덴어에 능통한 소설가가 됐다. 한때는 스웨덴에서 살았고 프랑스 사업가와 뜨겁게 사랑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어린 기억에는 여전히 공포와 굶주림의 아픈 상처가 남아 있다. 그리고 한 권의 소설이 나왔다. ‘빵조각의 오솔길: 굶주림, 사랑 그리고 집을 찾아서(Trail of Crumbs: Hunger, Love and Search for Home)’.

뉴욕타임스가 한국 입양아 출신의 여류 소설가를 20일(현지시간) 음식섹션 1면에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김순이(Kim Sunee, 37). 특이하게도 ‘김’이 이름이고 ‘순이’가 성이다. 함께 입양된 동생의 이름을 성으로 삼았단다.

그녀가 지난 1월 발간한 ‘빵조각의 오솔길~’은 유년의 아픈 기억과 함께 사랑과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살거나 여행했던 한국과 프랑스, 스웨덴, 루이지애나 시절의 음식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한 장(Chapter)이 끝날 때마다 음식의 조리법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기사를 쓴 타임스의 미미 리드 기자는 갈색 코트를 입고 나온 김순이씨에게서 ‘빅 이지’(Big Easy 뉴올리언즈의 별명)보다는 파리의 분위기가 묻어난다면서 “여행의 목적이 관광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녀는 음식블로그와 ‘커티지 리빙’ 매거진의 음식담당 편집자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순이씨가 생모에 의해 버림받은 것은 세살 때인 1973년이었다. 복잡한 시장통에서 회색 안개의 소용돌이 속에 버려진 그녀는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두려움과 굶주림에 떨었던 것은 생생하다”고 말한다.

사흘 뒤 경찰은 손에 빵조각을 움켜쥐고 “돌아올게”라는 엄마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되뇌는 어린 아이를 발견했다. 훗날 뉴올리언스의 중산층 가정에 입양된 그녀는 가족의 보살핌 속에 잘 성장했지만 정서적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유년의 기억 속에 항상 도사린 것은 배고픔과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미국의 할아버지는 솜씨좋은 요리사는 아니었지만 게살이 들어간 쇠고기 스튜를 잘 만들었고 홈리스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곤 한 가슴 따뜻한 분이었다.

스물두살의 그녀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살던 어느날 친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날 17세 연상의 프랑스 사업가 올리비에 바우산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는 천연비누와 화장품을 만드는 록시틴의 창업자였다.

6개월 후 바우산이 살던 드넓은 프로방스의 농장으로 옮긴 그녀는 자연 속에서 나오는 각종 재료들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며 미식가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시절 많은 프랑스의 향토 요리를 배웠고 한번은 즉석에서 30명분의 코스 요리를 대접한 적도 있었다.

그곳에서 바우산의 어린 딸 로리를 돌봤지만 ‘임시 엄마’라는 역할은 생모라는 꿈의 환영에 시달리는 그녀에게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5년 후 그녀는 바우산의 곁을 떠났다.

그녀가 책을 내고 나서 일부 언론과 독자들은 그녀가 유부남과 살았던 사실을 들먹이며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녀는 바우산이 아내와 별거 중일 때 그를 만났다. 한 기자가 “생모가 왜 당신을 버렸는지 알고 있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이런,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왜 그랬냐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야 할 것 같아요”하고 말했다.

“아이를 버린 것도 사랑의 행위”임을 깨달았다는 그녀는 “살아남은 것 이상으로 살아남았다”며 자신의 인생을 함축해서 말한다.

김순이씨는 “사랑과 음식, 요리에 대한 진부한 표현들이 있지만 사랑하는 이와 음식을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면서 “사랑을 하는 남자는 당신을 위해 소금과 크림과 버터를 원하는만큼 넣는다. 비록 그 사랑이 깨진다 해도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뉴욕=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