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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법률정보

불법체류 외국인도 노조 만들 수 있다

불법체류 외국인도 노조 만들 수 있다

“근로 대가로 임금 받으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
재계 “현장 상황 고려 안 해”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도 국내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을까. 대법원이 심리를 개시한 지 8년, 소송이 제기된 지 10년 만에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도 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조(이주 노조)가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25일 확정했다.

 서울·경기·인천에 살던 외국인 노동자 91명은 2005년 4월 노조 창립총회를 열고 위원장 등을 선출한 다음 서울노동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노동청은 외국인등록번호 또는 여권번호가 기재된 조합원 명부를 요구했다. 노조원 중 일부가 불법체류자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주 노조는 조합원 명부 제출이 노조법상 설립신고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노동청은 같은 해 6월 보완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노조 대표자로 기재된 조합원이 불법체류자임이 분명한 만큼 해당 노조가 불법체류 외국인을 주된 구성원으로 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인정된다”며 “조합원 명부 제출을 거부한 데 따라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2007년 2월 이를 뒤집었다. 노조법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여 등에 의해 생활하는 자’를 의미하므로 불법체류자도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취업 자격이 없는 불법체류 외국인도 자신의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된다”며 “이들도 노조를 결성하거나 가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 각국의 사례를 확인한 결과 불법체류 외국인의 취업이나 고용을 제한하더라도 노조 활동은 최대한 보장하는 게 국제적 기준에 맞다”며 “국내 거주 외국인의 수가 2005년 75만여 명에서 지난해 180만여 명으로 계속 증가하는 점, 국민의 인식태도가 변화하는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일영 대법관은 “불법체류 외국인의 고용을 제한하고 강제퇴거 등의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그 노조의 활동을 보장한다는 것은 모순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대만 정도를 제외하고 이주 노동자 노조를 허용하는 것이 국제적 추세”라며 “불법체류를 합법화하거나 취업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실질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서는 적법한 체류와 취업 자격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산업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불법체류자 단속을 반대하거나 체류 자격 합법화를 집단으로 요구하고 나서는 등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민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