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원 '보그' 동났다, 국민담배 권력 교체?

3500원 '보그' 동났다, 국민담배 권력 교체?

외국산 업체 '저가의 역습'
세금 3318원 빼면 182원
점유율 늘리려 손해 감수
"고객 늘린 후 추가 인상 예정"
기대한 금연 효과 적을 수도

 

 

국산뿐 아니라 외국산 담배까지 인상가가 적용되기 시작한 15일 오후 서울 옥수동의 한 편의점. 유동인구가 적은 주택가에 자리 잡았지만 몇몇 외국산 담배는 매대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편의점 직원은 “새로 물량이 들어왔지만 일부 브랜드는 국산보다 싸다 보니 일찍 동이 났다”며 “국산과 똑같이 4500원에 파는 외국산 담배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올라 예전보다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외국산 담배의 ‘역습’이 시작됐다. 담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올 들어 담배에 붙는 세금을 2000원 올리면서 에세·레종 등 KT&G의 인기 브랜드는 세금 인상분(2000원)만큼 오른 4500원에 팔리고 있다. 그러나 외국산 담배사들은 그만큼 담배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담뱃값 인상으로 기대했던 금연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BAT코리아는 슬림형 담배인 ‘보그’의 가격을 기존 2300원에서 1200원만 오른 3500원으로 책정했다. 세금 인상분을 감안하면 4300원에 내놓아야 하지만 자발적으로 800원을 깎아 준 셈이다. 갑당 세금 3318원을 빼면 겨우 182원이 남는데, 손해를 보더라도 떨어진 점유율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BAT는 ‘던힐’과 ‘켄트 컨버터블’도 1800원만 올렸다. BAT 관계자는 “당분간 현재의 가격을 유지한 뒤 시장 상황을 봐서 추후 가격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JTI코리아도 ‘카멜’의 가격을 1500원만 올린 4000원에 내놓았다. 외국산 담배 1위 필립모리스도 올 초 세금 인상분을 반영해 4700원에 팔던 주요 제품을 19일부터 200원 내린 4500원에 팔기로 하며 대응에 나섰다.

　최저 3500원의 가격은 담뱃값이 폭등한 상황에서 흡연자들이 부담을 덜 느끼며 구매할 만한 가격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보그가 앞으로 국민 담배가 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저가전략은 담뱃세 인상에 따른 담뱃값 상승을 계기로 KT&G가 지배하는 국내 시장의 판을 흔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순이익의 대부분을 외국으로 가져가는 외국산 담배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내 담배농가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NH투자증권 한국희 연구원은 “KT&G의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KT&G의 주가는 외국산 담배사들의 저가전략이 가시화된 지난 8일 이후 5.9% 내렸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서홍관 회장은 “1000원 정도의 인상 폭은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줄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글=손해용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