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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남자의 손길 소름끼치지만, 돈 때문에…"

"모르는 남자의 손길 소름끼치지만, 돈 때문에…"

 

[경남CBS 최호영 기자] 경남CBS는 2008년 겨울, 불황의 시기에 질병과 가난에 내 몰린 이웃들의 이야기를 `특별기획 2008 벼랑 끝 이웃들`로 다루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2011년 겨울, 하루하루를 시리도록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다시 만나본다. [편집자 주]

지난 11월 1일 새벽, 창원의 한 모텔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던 A(28)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모텔에 같이 투숙한 성구매자 B(33)씨로부터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것.

숨진 A씨는 4살 때 고아로 버려져 입양됐다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A씨는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지내왔다. 남들처럼 배우지 못해 번듯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묵고 있던 원룸 보증금을 갚기 위해 보도방 유혹에 빠져 들었다.

생명의 위협, 그리고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싸늘한 사회의 시선. 최악의 선택이지만, 돈이 필요해 오늘도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고 는 그녀들의 겨울 밤을 따라가 본다.

김영아(43.가명) 씨가 밤 8시쯤 출근을 위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집을 나서고 있다.

집 안에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이 TV를 보며 엄마에게 잘 다녀오라는 표시로 손을 흔든다.

엄마가 밤에 출근하는 생활이 딸에게는 이제 익숙한 듯 보였다.

그녀는 창밖에서 혼자 남겨진 딸을 한참 동안 안쓰럽게 쳐다보다 무겁게 발걸음을 뗀다.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출근할 때는 문을 꼭 잠그고 나가죠"

◈ "어린딸 엄마 기다리며 울다 잠들어…생계 때문에"

그녀의 직업은 `노래방 도우미`다. 전국 최대 유흥가 밀집지역인 창원시 상남동에서 이 일을 시작한 지도 6년이 넘었다.

그녀 역시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노래방 도우미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재산으로 그녀는 조그마한 카페를 운영했었다. 개업 초반에는 장사가 잘된다 싶었지만,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었고 결국 문을 닫게 됐다.

1억 가까운 빚만 떠앉게 됐다.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 당장 살길이 막막해졌다. 식당에서도 일을 했지만 한달 100만 원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결국 친구의 소개로 보도방의 유혹에 빠져 들었다. 해서는 안되는 최악의 선택이였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돈 때문이죠. 아이와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돈. 가진 것도 없고, 이미 나이는 들었고, 돈 백만원 받아서 빚 갚고 생활하기도 벅차죠. 어쩔 수 없이 친구 소개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금새 눈물이 흘렀다.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조금 넘었어요. 그나마 남편이라도 있었다면 힘이 덜 들었을텐데... 남편도 떠나고 사업도 망하니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스스로 죄짓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

밤새 일을 하는 내내 집에 홀로 남겨놓은 딸 걱정이 제일 앞선다. 한적한 주택가에 따린 원룸이다보니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홀로 두고 온 딸이 있는데 마음이 좋겠어요? 상상이나 돼요? 주택 원룸이라 출근할 때 현관문을 잠그고 나오죠.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불안하죠. 딸이 잠을 자다가 깨어 울며 전화해서 엄마을 찾을 때, 피눈물이 나죠. 새벽에 집에 들어와 보면 딸 베개가 흥건히 젖어 있어요. 울다 지쳐 잠이 든거죠. 그렇다고 이 일을 안할 수도 없고…."

그녀는 오후 8시에 출근해 새벽 3시쯤 퇴근을 한다. 밤새 세 테이블은 기본이며, 많은 날엔 다섯 테이블 정도 뛴다.

노래에 맞춰 손님과 부둥켜 춤을 추며 술 시중을 든다. 성매매까지 이어진다.

모르는 남성이 추근댈 때마다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 빚 갚고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억척스러운 마음에 꾹 참고 일을 한다. 몸이 망가져도 손에 쥔 돈을 보며 참는다.

"항상 두근거리죠. 낯선 남성에게 다가가 싫어도 싫은척 내색하지 않고, 기분 좋게 해 줘야 하는데…고통이 뒤따르죠. 손님 살갗이 닿을 때 소름이 쫙 끼치고, 이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돈을 빨리 모아야 겠다는 생각으로만 참고 일합니다"

그녀는 3년 뒤에 조그마한 식당을 낼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있다. "가족들은 제가 술집 주방에서 일을 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딸이 더 크기 전에 일 관두고 식당을 해볼까 구상 중에 있어요. 떳떳하고, 당당하게 돈을 벌고 싶죠."

그러면서 그녀는 한마디했다.

"여자로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후회되죠. 돈을 쉽게 만질 수 있다보니 도우미란 이 일을 쉽게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거죠. 정말 힘들 거든요. 처음 시작하는 도우미들 보면 시작한 사연이 어떻든 정말 안타깝고 답답하죠"

◈ "남들 시선 두려워 버스도 못탑니다"

짧은 치마와 짙은 향수를 뿌린 안나(35.가명) 씨도 노래방 도우미 생활을 한 지 4년이 넘었다.

거의 쉬는 날 없이 매일 술에 취해 있다 보니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간 수치가 높아 약을 달고 살고, 하루 한 끼만 밥을 먹으면서 위도 탈이 났다.

"새벽 4시에 퇴근하면 간단히 먹고 잠을 자죠. 거의 오후 4시까지는 꼼짝 안 하고 잠만 자죠. 일어나 밥먹고 또 출근하고…보건소 갔더니 간 수치가 높다고 해서 약을 받아왔는데, 밥을 먹어야 약을 먹죠.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먹는데… 술이 주식이고, 밥이 간식이 되어 버렸네요"

그녀는 옷 장사를 하다 사업이 망하면서 신용 불량자라는 딱지가 붙고 말았다. 동업한 친구가 돈을 떼먹고, 사채까지 끌어 쓰다보니 빚이 5,000만 원을 넘어섰다.

죽고 싶었다. 이만한 돈을 모으기도 힘든데 갚아 나가야 할 생각에 그녀는 살아갈 자신마저 없었다.

"돈이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었죠. 아직도 빚이 남았습니다. 사실 노래방 도우미만큼 힘든 게 없는데… 배운 것이 없다 보니 다른 일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저같은 상황에 몰리면…."

그녀는 버스를 타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다. 노래방 도우미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내가 술집에서 일하다 보니 남들에게 그렇게 보여질까 봐 버스 안 타는 거죠. 얼굴에 노래방 도우미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알아볼 것 같고, 쳐다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지난달 같은 지역에서 일하던 노래방 도우미 살해 사건은 그녀에게도 충격이었다.

"목이 졸려 죽었다는 얘길 듣고 소름이 끼쳐 몇 일간 일을 못했어요. 나도 그리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말 무서웠어요. 일하는 동료들이 손님한테 맞고 올 때도 많고, 심지어 잔을 집어 던지기도 하죠. 인격적인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니까요."

그녀도 이른바 `2차`에 나선다. 보도방에 메인 몸이라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손님이 원하면 나가야만 한다.

"비참하죠. 단지 돈 때문에 하는거죠. 참고 견디는거죠. 이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남자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실망을 많이 하죠. 특히, 결혼한 남자들이요. 우리도 떳떳하지 못하지만, 남자들이 찾으니까 이 일을 하는 거죠. 결혼요? 환상이 다 깨져 버렸어요."

그녀는 가족들에게 백화점에서 야간 물품 정리 일을 한다고 속이고 있다.

"이 일을 처음부터 좋아서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빨리 돈 작은 찻집이라도 열 수 있었으면, 그래서 빨리 이곳을 벗어 나고 싶어요“

그녀는 6남매 중 막내다. "어렸을 때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거든요.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정말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