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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우리아이들

"남자친구 무서워 못 헤어져요"…데이트 폭력 심각

"남자친구 무서워 못 헤어져요"…데이트 폭력 심각

 

#1. 남자친구를 만난 지 1년 정도 됐는데 제가 조금만 잘못해도 때려요. 온몸에 멍이 들기도 했고 가끔 칼을 들이대기도 해요. 한번은 헤어지자고 말했더니 "죽고 싶으면 헤어져"라고 하더군요. 정말 헤어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헤어지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집으로 찾아올 것 같아 지금도 무서워요.

#2. 제 남자친구는 때리진 않는데 헤어지자고 하면 벽을 막 치고 물건을 던지며 자해를 해요. 한번은 강화유리를 주먹으로 쳐서 손이 찢어졌는데 며칠 후 성격이 안 맞는 것 같다며 헤어지자고 했더니 화를 못 참고 또 벽을 쳐서 상처가 더 심해졌어요. 그래놓고 자기가 더 힘들대요. 하지만 사실은 사귈 뜻도 없는데 억지로 사귀는 제가 훨씬 더 힘들어요.

#3. 저희 어머니는 결혼 전 4년 동안 아버지로부터 폭행과 협박에 시달린 끝에 어쩔 수 없이 결혼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는 50세를 넘긴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앞서 소개한 인물들은 모두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이다. 데이트 폭력이란 이성애의 감정을 가지고 만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을 가리킨다.

심각한 점은 이같은 데이트 폭력이 앞서 소개한 세 사람만의 특수한 경험이 아닌 상당수 한국여성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가 2009년 9~10월 서울지역 11개 대학 재학생 800여명을 대상으로 대학 입학 후 데이트 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상당수가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데이트 경험이 있는 여학생들 중 77.8%가 정서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주요 내용은 ▲상대방이 자신의 핸드폰, 이메일, 개인 블로그, 홈페이지를 자주 점검한다(59.7%, 이하 응답률)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한다(40.9%) ▲다른 이성을 만나는지 의심한다(32.1%) 등이었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여성 응답자는 61.4%였다. 주요 사례는 ▲(상대방이 자신에게)위협을 느낄 정도로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10.6%) ▲결별 후 자주 집이나 학교 앞으로 찾아와 다시 만나자고 한다(16.3%) ▲죽이겠다거나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2.3%) 등으로 나타났다.

데이트 중 당한 성적 폭력은 ▲나의 기분에 상관없이 키스를 한 적이 있다(24.2%)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했다(12.1%) ▲몸을 만진다(15.2%) ▲애무를 하도록 강요한 적이 있다(8.1%) ▲강제로 성기삽입을 하려다 삽입 직전에 그만뒀거나 강압적으로 성기삽입을 했다(7.9%) 등이었다.

신체적 폭력의 주요 사례는 ▲집에 못 가게 막은 적이 있다(24.6%) ▲발로 문을 차거나 주먹으로 벽을 친 적이 있다(11.3%) ▲자해하거나 흉기로 위협한 적이 있다(기타) 등이었다.

근본적인 책임은 가해자인 남성들에게 있지만 한국 여성들의 인식 역시 데이트 폭력이 증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 피해여성들은 폭력이 발생한 후에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여성들이 성적 폭력 후에도 연인을 용서하고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어서 ▲헤어질 만큼 심하지 않아서 ▲사귀는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등으로 확인됐다. 신체적인 폭력 후에도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헤어질 만큼 심하지 않아서 ▲나도 잘못한 부분이 있어서 등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여성들은 데이트 폭력을 당했을 경우 자기표현을 확실하게 함과 동시에 애초에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으로 자책하지 않아야한다"며 "나아가 우리 사회 역시 남성들의 책임을 피해여성들에게 전가하는 일을 멈춰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 남성다운 일이라는 잘못된 가치관도 데이트 폭력을 유발한다"며 "한국 대중매체가 지금처럼 남성들의 일방적인 행위를 미화할 경우 남자 청소년들이 데이트를 할 때도 이같은 행동을 모방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강조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