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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세 차례 기만전술 1976년 엔테베 작전 빼닮았다

‘아덴만 여명’세 차례 기만전술 1976년 엔테베 작전 빼닮았다

 

기만이 ‘아덴만 여명(黎明)작전’의 성패를 갈랐다. 21일 4시간58분에 걸친 소말리아 해적 진압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만작전으로 해적의 눈과 귀를 따돌리고, 해적과 선원을 분리시켰다. 이스라엘 특공대가 1976년 7월 기만작전으로 약 4000㎞ 떨어진 우간다 엔테베(Entebbe)공항에서 자국민 등 인질 103명을 구한 것에 버금가는 쾌거다(엔테베 작전).

 21일 오전 5시17분(현지시간) 아덴만 인근 해상. 해군 청해부대 소속 최영함은 소말리아 해적이 장악한 우리 선박 삼호주얼리호를 상대로 작전을 개시한 지 19분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삼호주얼리호를 앞에 두고서다. 동시에 최영함 우현 쪽으로 고속단정 1, 3호를 내렸다. 최영함은 다시 왼쪽으로 키를 돌렸다. 좌현으로 2번 고속단정을 떨어뜨렸다. 세 고속단정에는 해군 특수전(UDT/SEAL) 요원 15명이 나눠 타고 있었다. 해적의 눈을 따돌릴 수 있었다. 최초의 기만작전이었다.


 5시23분. 최영함 탑재기 링스헬기가 이륙했다. 해적들의 관심이 분산됐다. 5시29분. 최영함은 삼호주얼리호에 우리말로 호출했다. 선원들에게 작전 개시를 알렸다. 상선검색망을 통해서였다. “잠시 후 우리 해군이 여러분의 구조를 위해 공격할 것입니다. 안전구역으로 대피하고, 외부로 나오지 마십시오.” 선원과 해적 분리 작전이었다. 두 번째 기만작전이었다. 해적들은 또 속아 넘어갔다.

 5시40분. 세 번째 기만작전이 실시됐다. 링스헬기와 최영함이 삼호주얼리호를 향해 발포했다. 선교(조타실)의 레이더도 파괴시켰다. 해적들이 허둥댈 때 UDT 15명이 2개 공격팀으로 나눠 삼호주얼리호에 올랐다. 35분 만이었다. 6시30분. UDT 공격팀은 4층의 선교를 완전 장악했다. 작전 개시 1시간13분 만이었다. 아덴만의 여명시간인 오전 6시4분. “선원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입니다! 현재 선박은 대한민국 해군이 장악하였습니다. 안심하시고 갑판으로 나와 주십시오.” UDT 공격팀을 본 선원들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후 해적 잔당 소탕은 격실을 돌며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엔테베 작전과 여러 면에서 빼닮았다. 엔테베 작전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에어프랑스 139편(248명 탑승)을 납치한 뒤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공항에 도착해 터미널에서 인질로 잡아둔 105명(이스라엘인·유대인 85명, 승무원 등 20명)을 구출하기 위한 이스라엘군 작전이다. 당시 이스라엘 특공대 1명이 숨졌지만 인질 103명을 구출했다.

첫째는 동원부대다. 아덴만 여명작전에는 대한민국 최고 정예의 해군 UDT 요원 15명이 투입됐다. 이스라엘군은 엘리트 특공대원 100명을 투입했다. 성과도 비슷하다. 우리는 18일의 최초 작전에서 안병주 소령 등 3명이 부상했지만, 아덴만 여명작전 때는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으며 선원 21명 전원을 구했다. 이스라엘군은 1명이 숨졌지만 인질의 사망 피해는 2명에 지나지 않았다. 우간다군 45명도 사살했다. 당시 특공대장으로 유일하게 사망한 요나탄 네타냐후는 베냐민 네타냐후 현 이스라엘 총리의 친형이다. 국민적 영웅이 됐다.

 둘째는 기만작전이 성패를 갈랐다. 이스라엘 특공대가 C-130 수송기로 엔테베공항에 도착한 것은 7월 6일 밤 11시(현지시간)였다. 야음을 이용해서였다. 그러곤 화물칸에서 벤츠차 1대와 복수의 호위용 랜드로버차를 내렸다. 특공대원들이 이 차를 타고 인질들이 붙잡혀 있던 공항터미널로 향했다. 이디 아민 당시 우간다 대통령 또는 요인이 도착해 공항 터미널로 가는 것으로 위장한 것이었다. 아민은 평소 벤츠를 즐겨 탔다. 특공대원 1명이 아민으로 분장했다. 특공대원은 우간다 공항 검문요원에 걸렸지만 곧바로 공항 터미널로 돌진할 수 있었다. 작전을 실시하면서 특공대원들은 히브리어를 사용했다. 납치범들이 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작전에 걸린 시간은 90분이었다. 작전명 번개작전(thunderbolt operation) 그대로다.

 셋째는 준비기간과 도상연습이다. 엔테베작전은 에어프랑스 여객기 납치 후 일주일 걸렸다. 아덴만 작전은 6박7일 만에 끝났다. 작전 개시 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공항터미널 내 인질 위치를 파악했고, 아프리카에서 건축사업에 참가한 이스라엘 회사는 군에 관련 정보를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군은 엔테베공항 터미널 모형을 만들었다. 도상연습이 실시됐다. 아덴만 여명작전 때는 삼호해운 쪽에서 부산에 정박한 다른 배의 내부 구조를 최영함에 제공했다. 배 규모는 1000t 정도 차이가 나지만 내부 구조는 똑같았다. 우리 대원들이 손금 보듯이 보면서 작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우리 요원들은 몇 번에 걸쳐 사전에 도상연습을 했다.

 넷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국민을 구한다”는 결의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중동전의 영웅 이츠하크 라빈이었고 국방장관은 시몬 페레스(후에 총리)였다. 이스라엘에 우호적 세력이 없던 우간다와 이스라엘은 약 4000㎞ 떨어져 있음에도 결단을 내렸다. 이스라엘 C-130 수송기는 아랍국가의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홍해 등을 따라 30m 높이로 비행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이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이 담겨 있다. 국격은 하루아침에 올라가지 않는다.

김수정·정용수·전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