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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우리아이들

대한민국 엄마, 교육에 지치다 ② 질주하는 얼리맘

② 질주하는 얼리맘

 

주부 이정숙(41·서울 도곡동)씨는 얼마 전 중1 아들과 경기도 유기견센터를 찾았다. 청소를 하고 개의 특성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이씨는 “수의사를 꿈꾸는 아들이 고교와 대학에 갈 때 유리하도록 관련 봉사활동 기록을 남겨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김현정(39·서울 잠원동)씨도 방학 중에 중1 딸과 복지관에서 초등 1~3학년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모녀는 외국 생활을 해 영어에 능통하지만 단순한 봉사활동만은 아니다. 딸의 대학 진학(영어교육과)을 염두에 둔 것이다.

 두 주부 모두 자녀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아이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컨설턴트 역할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개인 생활이 거의 없다. 이들은 “아이의 상급학교 진로에 도움 줄 색다른 스펙(Spec·경력)을 쌓아주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이처럼 엄마와 아이가 한 팀을 이뤄 체험활동을 하는 일은 요즘 서울 강남에서 흔하다. 1990~2000년대 교육에 올인하는 ‘강남 엄마’들이 잘 가르치는 학원 정보를 모으고, 선행학습을 시켰다면 최근엔 양상이 달라진 것이다. 자녀의 고입·대입에 유리한 정보를 찾아내 현장체험이나 봉사활동 아이디어를 짜낸다. ‘일찍 움직이는 엄마(얼리맘)가 아이의 포트폴리오를 결정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고입·대입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면서 얼리맘이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21세기형 엄마 자화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주부 백모(42)씨는 지난해부터 외국어고에 다니는 딸의 학급 엄마들과 창의적 체험활동 모임을 만들었다.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전업주부들은 남편의 인맥을 활용해 체험학습 장소를 섭외한다. 백씨의 딸은 정치외교학과 지원을 생각하고 있어 국회를 뚫었다. 여름방학 때 의원실에서 일주일간 인턴을 하게 했다. 로펌에서 인턴을 시킨 엄마도 있었다. 이에 대해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적성과 진로를 찾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엄마의 인공적인 노력이 지나치면 입학사정관들로부터 감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얼리맘들은 “괴롭다”고 했다. “아이를 달달 볶아 스펙을 쌓도록 하려니 마음이 아파요”(중2 엄마 김모씨), “극성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준비를 안 하면 늦어요.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잖아요.”(초등 6학년 엄마 최모씨)

대표적인 게 올해부터 전국 초등 1·2학년, 중 1, 고 1에게 적용되는 창의적 체험활동이다. 중학생은 영어수업 시간과 비슷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학생들은 지난해 정부가 개통한 ‘에듀팟(창의적 종합지원시스템, www.edupot.go.kr)’에 접속해 체험활동 기록을 남겨야 한다. 교사가 승인한 기록만 남길 수 있으나 학생이나 학부모가 요구하면 그대로 인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학이나 고교는 이런 기록을 입시에 활용한다.

 이런 일이 대부분 엄마 숙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아이는 이름만 올리고, 엄마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창의적 체험활동 설명회장을 찾은 윤모(41·서울 상암동)씨는 “대치동 엄마들은 자기들끼리 속닥이며 좋은 정보를 독차지한다고 들었다”며 “강북 엄마들의 소외감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주부 박모(43)씨는 “잘나가는 학원강사를 알려주지 않듯 체험활동 장소도 마찬가지”라며 “엄마 네트워크에 들어가려면 힘이 든다”고 했다.


◆에듀팟(edupot)=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구축해 운영 중이다. 초·중·고생이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학교 안팎의 활동을 기록한다. 학생들은 동아리·진로·봉사·방과후 활동 등을 올린다. 이 기록은 포트폴리오로 만들어지며, 상급 학교 진학 때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얼리맘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서양속담의 ‘early bird’에서 착안해 본지가 만든 조어

▶ 인터넷에 능숙한 30~40대

▶ 온·오프라인 모임과 각종 설명회장서 정보 수집

▶ 중학교 입학 이전 아이의 진로와 적성 발굴


▶ 직접 아이의 포트폴리오 구축

교육팀=강홍준·박수련·박유미·김민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