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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자유공간

“요즘 진짜 로비는 돈으로 안 해…자녀들 취직시켜 주는 게 최고”

하 사장 “내가 대기업 들어가게 해준 시장·구청장·국장 자녀만 7명”
[탐사 기획]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외치지만 … 30년 건설 하청업체 사장의 고백

 

30년 넘게 국내 건설현장을 지킨 굴지의 대기업 하청업체인 K사의 하윤성(가명·53) 사장. 그는 기자와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업체 사장 명함과 대기업 A사 로고가 찍힌 ‘태스크포스(TF)팀 이사’ 명함을 함께 꺼냈다.

“우리 회사 명함은 내 사업을 할 때 , A사 이사 명함은 대기업을 대신해 로비할 때 건네는 것입니다.”

하윤성 사장이 들고 다니는 두 개의 명함.
하청업체 사장들이 들고 다니는 이른바 ‘로비용 명함’은 대기업에서 직접 찍어준 것이다.

“하청업체 사장들이 이사·영업부장 등 다양한 직책의 대기업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공사 수주와 인허가를 받기 위해 정부 부처·지자체 공무원, 정치인, 교수 등에게 전방위 로비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대기업이 공사를 따면 우리가 하청을 받는 거죠. 대기업은 앉아서 하청업체를 부려 먹는 대신 수주를 하면 우리에게 일거리를 줘 보상하는 방식이죠.”

하 사장은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뇌물로 뿌리는 로비금액은 총 공사비의 1% 정도라고 했다.

“공사 수주를 위해 심의위원들에게 돈을 뿌리는 것으로 로비는 시작됩니다. 공사를 따도 단계마다 담당 공무원들에게 ‘급행료’ 성격의 돈을 줘야 일이 제대로 굴러가죠. 공사 심의에서부터 준공허가가 나올 때까지 50명이 넘는 공무원·교수 등에게 돈을 뿌리고 술과 밥을 산 적도 있습니다. 돈을 주는 기준도 직급별로 정해져 있어요. 지자체 공무원 중 팀장(계장)급은 50만~100만원, 과장급은 200만~300만원, 국장급은 400만~500만원 정도입니다.”

로비 과정에서 뇌물 수수 문제가 터지면 대기업 대신 하청업체 사장들이 감옥까지 간다는 게 하 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이런 방식이 이쪽 바닥에서는 특별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과거와 달리 국내 건설업계의 로비 관행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 사장은 “국내 건설 하도급업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잘못된 길을 걷게 됐고 지금은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국내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곧 이민을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형건설업체와 거래하는 하청업체 사장들이 그들의 해결사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꼭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부터 뇌물 로비도 새롭게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요즘 공무원들은 현금·수표 뇌물은 받지 않지만 미화 100달러 지폐로 주면 받습니다. 그리고 진짜 로비는 돈으로 하지 않습니다. 뇌물 대신 자녀들 취직을 시켜주는 게 신종 수법입니다. 로비 받는 사람들도 워낙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다 보니 돈 몇천만원 받는 것보다는 자식을 대기업에 취직시키는 게 낫다고 보는 거죠. 제가 청탁을 받고 대기업체 신입사원으로 취직시킨 시장·구청장·국장·과장 자녀만 해도 일곱 명은 됩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돈을 주는 것보다 직원으로 뽑아 끈을 만들어 두는 게 더 낫다고 여기는 풍토입니다.”


탐사1·2팀 김시래·진세근·이승녕·강주안·고성표·권근영·남형석 기자, 이재동 인턴기자(고려대 4학년), 이정화 정보검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