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 24시
5월 17일 성년의 날 저녁. 미성년자가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되는 축복받아야 할 날이지만 사회 한 켠에서는 '흔들리는 젊은이들'의 낯뜨거운 군상들을 볼 수 있었다.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대로변에서 키스를 하거나 술에 취해 숫제 골목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 등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기자는 이날 저녁 비가 제법 강하게 내리는 가운데 젊인이들의 거리인 홍익대 앞으로 나가봤다.
◇10시 37분경
홍익대 정문 주변의 한 골목 안 여대생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쓰러져있다. 무방비 상태의 여성은 긴 셔츠에 하의는 속바지 차림이었고 스타킹은 군데 군데 찢어져 있었다. 연락을 받고 도착한 친구는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며 "혼자 감당할 수 없어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친구에 따르면 이 여성은 올해 20살의 D여대생.
◇11:20분경
홍대 앞 지하철에서 우산 팔다가 빗자루로 맞아, 이빨이 흔들거린다고 20대의 남자가 지구대로 찾아와 하소연한다. 하지만 빗자루로 때렸다는 사람은 현장에서 도망을 가버렸다. 그러나 이 사람은 술이 취해 현장에다 잠바를 둔채로 도망갔고 잠바 속에는 신분증과 돈까지 들어 있는 지갑이 들어있었다. 결국 이 남자는 입건 조치.
◇11:48분경
인천에는 놀만한 클럽이 없어 서울 홍대로 왔다는 20대의 남자 둘. 이들은 스스로 신원조회를 해달라고 지구대를 찾아왔다. 클럽에 들어가는데, 한 친구가 신분증을 안 가지고 왔다는 이유다. 이들은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임시신분증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지구대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발급하지 않았다. 황당해 보이지만 이같은 신원조회 요청도 심심찮게 있다는 게 경찰관들의 설명.
◇12:17분경
비가 세차게 오는데 상의를 벗고 속옷차림의 20대의 여자가 다가온 경찰관에게 마구 욕을 한다. 그녀는 잠바로 미니마우스 인형을 보호하고 있었다. 20대의 여자는 “비가 오니까 소중한 미니마우스 인형을 감싸주기 위해서 옷을 벗었다”고 답한다. 그녀는 미니마우스 인형을 꼭 껴안고 “캐나다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언니가 록키산맥의 정기를 받고 강하게 힘내라고 준 소중한 것”이라며 울었다. 그녀는 벌금을 안낸 기소중지자로 밝혀져 경찰서로 입건됐다.
17일 저녁 8시 30분부터 다음 날인 18일 새벽 4시까지 홍익지구대에는 총 14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이 중 2건은 경찰서로 입건됐다. 홍익지구대의 한 경찰관은 “금요일저녁이면 보통 50여건의 사건이 접수되며 이 중 10여건이 경찰서까지 가지만 강력사건이 없는 대부분 잡범”이라고 말한다. 그는 "성년의 날이었지만, 거센 비탓에 사건접수가 적었던 날"이라고 말했다. 지구대의 다른 경찰관은 “이런 날은 한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다”고 전한다.
아빠 경찰관의 비애
축복받는 성년의 날이지만 같은 또래의 자녀를 둔 아빠 경찰관들에게는 비애를 안겨준다. 경찰관을 대상으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거나 딸 또래의 술취한 여성이 속옷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모습은 지구대 내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경찰도 사람인가? 교통 쪽에서 계속 근무하다 홍익지구대에서 지구대 근무를 12년 만에 하는 이종선 팀장(52세, 직급 경위)은 법정스님의 ‘인연이야기’를 읽고 틈틈이 마음을 다스린다. 그의 25살 된 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팀장은 “술취한 젊은 여자를 남자가 업고 가는 것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고 말한다. 같은 지구대의 유해장 경위(52세)는 21살과 20살의 두 딸을 대학에 보내고 있다. 일 년에 1400만원이나 되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퇴직연금에서 대출을 받고 있다. 유경위는 “아이들이 나중에 갚으면 다행”이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이들 아빠경찰관들은 홍대 ‘클럽데이’나 ‘성년의 날’ 같은 날은 잔뜩 긴장한 채 출근한다. 홍익지구대는 순찰차만 5대로 마포서에서 가장 많다. 그러나 이런 날은 5대를 풀 가동해도 모자랄 정도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10시 전에는 집에 좀 들어갔으면 좋겠다. 술에 취해서 욕 좀 안했으면 좋겠다. 과도한 노출, 공공연한 스킨쉽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아빠 경찰관들이 입을 모으는 얘기다. 유해장 경위는 “주말은 새벽 3시 30분 정도면 '전반전'이 끝난다. 5시 경의 '후반전'은 홍대 구석구석에 쓰러져 있는 젊은이들을 귀가조치 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며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김정록.최영기.손진석.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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