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HID 빛 보면 “눈 감고 4초 운전하는 셈”
인터넷서 쉽게 구입 불법장착 … 5개월간 7614건 단속
일반 등보다 빛 세기 17배 강해 맞은편 차 사고 위험
지난해 10월 11일 밤. 강원도 평창에 사는 박모(45)씨는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리서 유난히 빛나는 전조등을 비추며 달려오는 차가 보였다. 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듯 보였다. 마주 오던 차가 커브길을 돌아 박씨의 차와 일직선이 되는 순간, 전조등의 불빛이 눈앞을 완전히 가렸다. 태양을 정면으로 본 것처럼 박씨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박씨는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상대 차와 접촉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박씨는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했다. 경찰 조사 결과 상대 차는 고광도 방전식(HID·High Intensity Discharge) 전조등, 일명 ‘제논램프’를 불법으로 단 것으로 드러났다.
똑바로 쳐다봤을 경우 일시적인 시력 상실을 가져오는 HID가 ‘밤길 운전의 공포’로 자리 잡고 있다. 경찰청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HID의 광도(빛의 세기)는 규격 램프의 최대 17배다. 자동차성능연구소도 연구보고서를 통해 “HID로 인해 4초 정도 시력 상실이 올 수 있어 대형 사고의 원인이 된다”며 “이 정도 시력 상실이면 130m 이상을 눈을 감고 달리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경찰은 올 5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5개월간 HID 전조등을 불법으로 설치한 차를 집중 단속했다. 경찰청 교통안전계는 7일 “5개월간 전국적으로 HID 차량 7614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HID 전조등을 불법으로 설치했다가 적발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HID는 경찰뿐 아니라 국토해양부·손해보험사 등의 오랜 골칫거리다. HID로 인해 교통사고가 증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HID가 사고의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HID에 대해 연구해온 자동차성능연구소 강병도 책임연구원은 “HID로 인해 일어난 사고라 할지라도 사고의 원인을 그것으로 규정하긴 쉽지 않다”며 “제동장치의 결함이나 졸음운전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찰 관계자는 “HID를 불법 장착한 차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HID는 사고의 위험과 더불어 ‘큰 불쾌감’을 준다고 지적했다. “밤 운전에서 눈부심으로 인한 운전자의 불쾌함이나 불안은 매우 큰 편”이라고 말했다. HID가 ‘운전 문화의 성숙’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불법 HID는 온라인을 통해서도 쉽게 설치할 수 있다. 대형 포털에서 ‘HID’를 검색하면 수십 개의 판매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취재진이 검색 결과에 나온 E업체에 전화로 문의해 본 결과 “설치는 불법이지만 ‘튀지 않으면’ 단속에 걸리지 않으니 걱정 말라”며 “고급차의 순정품과 똑같은 색깔과 모양으로 해드리겠다. 경기 지역까지는 출장 설치도 가능하다”고 했다. 가격은 10만~50만원까지 다양했다.
HID는 수입차와 국산 고급 승용차에도 장착된다. 판매자들이 말한 ‘순정 HID’는 차량 출고 당시 장착된 전조등을 의미한다. 문제는 불법 HID다. 강병도 연구원은 “고급차의 HID에는 ‘자동광축 조절장치’가 있어서 빛을 아래쪽으로 비추도록 자동 조절한다”며 “불법 튜닝한 차에는 이 장치가 없기 때문에 빛의 방향을 조절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법 HID의 더 큰 문제는 ‘광학적 설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강 연구원은 “순정 HID는 빛을 하나로 모아서 곧게 아래로 뻗어나가게 설계한다. 초점이 맞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법 HID는 그런 설계 없이 설치된 것이어서 빛이 사방으로 산란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운전자의 안전 운행에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강인식·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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