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온라인 행적 블랙박스는 알고 있다
여름 들어 금융권과 보안업계 모두 예의주시하는 곳이 있다. 경기도 분당의 하나INS 통합전산센터다. 하나은행이 지난달 가동에 들어간 이 시설은 전국 600여 은행 점포를 거미줄처럼 이은 데이터망의 총관제탑이다. 그런데 이 정도가 뭐 그리 큰 관심사일까. ‘온라인 블랙박스(black box)’라는 신개념 보안 시스템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숱한 의혹을 낳은 에어프랑스 여객기 대서양 추락사고를 계기로 이달 들어 항공기 블랙박스가 새삼 인터넷의 주요 검색 키워드로 떴다. 때마침 인터넷뱅킹 사고에 대비한 ‘온라인 블랙박스’가 은행들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참이다. 고객들의 온-오프라인 입·출금 거래는 기본이고, 하나망에 연결된 임직원 PC의 작업 내용이 하루 24시간 자동 기록된다. 김홍근 시스템운영부장은 “금융사고가 터졌을 때 정확한 원인을 찾으려고 웬만한 데이터는 6개월 이상 보관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블랙박스’ 확산=금융권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블랙박스’는 일반 기업의 보안장치로 속속 도입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망이나 기업 데이터망에 한번 보안사고가 나면 그 피해는 항공기 사고 못지않다. 인명 피해는 없겠지만, 국가보안이나 경제적 폐해는 천문학적 규모일 수 있다. 국가정보원이나 수사기관 등이 조금씩 도입해 온 온라인 블랙박스가 민간 보안업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앞으로 사이버 공간의 활동이 몽땅 블랙박스에 담기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보안업체인 KTB솔루션과 시큐브는 ‘IT-블랙박스’를 공동 개발했다. 회사 서버인 중앙통제센터에서 직원 PC의 조작 내용을 원격 기록·저장하는 솔루션이다. 이용자의 파일과 e-메일·메신저 내용은 물론, 어떤 사이트에 접속했고, 어떤 명령어를 입력했는지를 관리한다. 김태봉 KTB솔루션 사장은 “종전엔 PC 이용자의 입·출입 정보를 담는 정도였다면, 이젠 온라인의 모든 행적을 저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입 물류정보유통회사인 케이엘넷은 최근 서울 역삼동 인터넷데이터망에 IT-블랙박스를 달았다. 전국적으로 한 해 2500만 개 컨테이너의 흐름과 온라인 보안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최운호 신사업본부장은 “거래 물류·해운업체들도 블랙박스를 설치하려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주요 온라인망엔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춘식(정보보호학) 서울여대 교수는 “인터넷 업계는 로그인(이용자 입·출입) 기록인 ‘로깅’ 리스트만 저장하는 게 보통이다. 로깅은 단순 입·출입만 확인되지 상세한 내역은 알 길이 없어 사고 원인 분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선 ‘정보기술(IT)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를 기업에 요구한다. 주요 산업체의 경우 IT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사물 정보의 보안과 기록을 의무화한 규칙이다. 하지만 블랙박스 역시 원천적 문제가 있다. 회사가 구성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셈이고, 블랙박스가 통째로 외부에 유출될 우려가 있다.
◆‘인체 블랙박스’ 시대 멀지 않아=개인의 하루 일정 정보와 신체 상태를 고스란히 담는 ‘라이프로그(Lifelog) 시대’도 멀지 않았다. ‘인체 블랙박스’로 불린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배창석 박사는 “특정인의 하루 일과를 실시간 백업하는 ‘자동 일상 기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상사를 오디오·비디오·위치·생체 등 여러 형태의 데이터로 담는 기술이다. 카메라가 장착된 안경은 영상을 기록한다. 마이크와 위치추적장치(GPS)가 달린 귀걸이와 목걸이는 소리와 위치 정보를 모은다. 몸에 부착한 생체 센서는 심근경색 등 몸에 이상 징후가 없는지 점검한다. ETRI는 이런 데이터를 무선으로 받아 가방·벨트·다이어리 등 소지품에 담는 내장형 블랙박스 ‘가젯(Gadget)’을 개발했다. ‘인체 블랙박스’ 개념은 1945년 미 대통령 직속 과학연구개발국(OSRD)의 바네바 부시 국장이 제안했다. 90년대부터 미국의 MIT,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 등이, 2000년대 이후엔 마이크로소프트·노키아 같은 글로벌 기업이 차세대 연구 프로젝트로 추진해 왔다.
이원호 기자
◆블랙박스=기기나 서비스의 상황을 시간대별로 저장하는 장치와 솔루션. 항공기는 사고 발생 때 정확한 원인을 따지기 위해 반드시 탑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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