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지하철 `성추행`…여성들 `지하철 타기 두렵다`
"지하철도 이제는 마음 놓고 이용하지 못하겠어요."
지하철 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대낮에도 성추행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10대 청소년부터 4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피해 여성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노인이나 노숙자들까지 성추행에 가세하고 있다.
◇악몽의 출·퇴근길 지하철
회사원 이인애씨(32·여·가명)는 요즘 지하철 타기가 두렵다. 얼마 전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월요일 출근길, 어김없이 분주하게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지하철은 금세 만원을 이뤘다.
동대문역을 지날 쯤 이씨는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 같았지만 "사람이 많아 그렇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불안감과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40대 남성이 충무로역에 도착할 때까지 이씨의 엉덩이를 계속해서 더듬었던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대응할지 몰랐던 이씨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다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씨는 "아직도 꿈에서도 생각이 난다"며 "그 당시 상황만 생각하면 소름이 돋고 무섭기까지 하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회사원 강희원씨(30·여·가명)도 최근 지하철 성추행의 피해자가 됐다. 강씨는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명동역을 지날 무렵 문이 열렸고 60대 남성이 자신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자리에 앉은 남성은 갑자기 강씨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손으로 허벅지까지 더듬기까지 했다. 참다 못한 강씨는 "왜 이러세요"라고 소리쳤지만 이에 대응한 남성의 태도는 가관이었다.
오히려 소리를 지르며 "왜 나한테 소리지르냐, 내가 당신한데 뭐 한거 있냐"고 되레 더 큰 소리로 면박을 줬다. 그것도 모자라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퍼부으며 유유히 다음 정거장에서 사라졌다.
강씨는 "성추행을 저지른 남성이 오히려 나에게 소리 지르고 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며 "성추행을 당한 것도 분하지만 그때 당황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잠을 이룰 수 없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지하철 성추행
서울 지역 내 지하철에서의 성추행 범죄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경찰청의 '지하철 범죄현황' 분석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6월까지 서울지하철에서 발생한 범죄는 총 679건으로 나타났다. 지하철범죄 가운데 성추행 범죄는 216건(31.8%)이었으며 2호선에서만 126건(58.3%)이 발생했다. 지난해 지하철 2호선 성폭력 발생률보다 약 8.3% 증가한 수치이다.
서울시의 조사결과도 마찬가지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1371건의 성범죄 가운데 61.3%인 840건이 지하철 2호선에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4호선이 28.3%인 388건으로 뒤를 이었고 3호선 86건, 1호선 57건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05년에 일어난 성범죄 406건 가운데 246건, 2006년에는 532건 가운데 318건, 2007년에는 433건 가운데 276건이 2호선에서 일어났다. 올해는 7월말 현재 일어난 220건의 성범죄 가운데 158건이 2호선에서 발생했다.
◇"피해 여성들 적극적인 대응 필요"
경찰요원의 부족과 피해 여성들의 고발 저조 등으로 인해 지하철 내에서 성추행 범죄가 쉽게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하철이라는 협소한 공간 속에서 성추행 범죄가 벌어지다 보니 적발 또한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지하철 성추행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인 대책마련도 중요하지만 여성 스스로가 적극적인 대처를 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민혜정 활동가는 "피해여성들이 소리를 지르는 등 적극적인 대처가 가장 필요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피해 여성들을 함께 도와줘야 한다"며 "주위 시민들이 큰소리로 성추행 상황을 알려주든지 지하철경찰대에 신고를 하는 등 모두가 적극적인 대응을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하철경찰대 관계자는 "출·퇴근 시간에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있다보니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의 경우 수치심 등으로 인해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주위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성추행을 하고 있다고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신고도 당부했다. 신고자체를 꺼려하는 상황으로 인해 지하철 내 성추행 범죄가 줄어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형사정책연구원의 최근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1000명당 17.9명이 성범죄에 시달린 것으로 조사됐지만 실제 신고율은 성폭행의 경우 7.1%에 그쳤다.
지하철경찰대 관계자는 "성추행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으면 체포할 수 없다. 신고는 많이 접수되지만 해당 여성들의 회피로 인해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성추행을 당하고 있는 위치 등을 112에 신고를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성추행한 사람을 검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혜정 활동가는 "사회적인 캠페인 등을 통해 성추행이 명백한 범죄행위고 나쁜 행동이라는 사실을 전 국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며 "지하철경찰대에 대한 많은 홍보를 통해 범죄발생시 주위 사람들이 즉시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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