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몸&마음] `그놈의 막말`의 전염성
막말이 사회 전반에 난무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상대방에게 "범법자 소굴" "자신이 돼지니 남도 돼지로 보이고…" 등의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낸 지 오래다. 심지어 헌법 수호 의무가 있는 대통령마저 "그놈의 헌법"이란 말을 했다. 또 국책연구기관의 한 원장은 공개 강연에서 "여성은 구멍이 하나 더 있으니 남성보다 진화했다"는 말로 '여성인력 활용의 중요성'을 피력(?)했고, 어느 민선 시장은 "깜둥이들이 득실거리는 워싱턴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공개석상 발언이 이 정도니 인터넷 댓글을 통한 보통 사람들의 저주의 막말은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다. "언어는 문화 자본의 표현이다"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설명처럼, 말은 화자(話者)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어우러진 결과다. 즉 비천한 언어를 쓰는 사람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언어를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훈련을 못 받은 사람이다.
문제는 생존본능에서 유래하는 인간의 적응력이 자극을 점차 둔하게 만드는 '탈감작(脫感作:desensitization)' 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즉 처음 막말을 접할 땐 경악과 멸시의 반응을 보이지만 반복해 듣다 보면 무심해진다. 의학계에선 탈감작 반응을 알레르기 질환, 공포증 등 질병 치료에 활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에게 소량의 꽃가루를 주사해 점차 양을 늘리면 꽃가루에 대한 민감성이 무뎌져 알레르기 증상이 점차 호전된다.
현재의 막말 홍수를 방치하면 문화 수준뿐 아니라 도덕성과 죄의식도 떨어져 사회가 점점 더 험악해질 것은 자명하다. 이는 빈집의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놔두면 너나없이 빈집 유리창을 깨게 돼 결국 그 동네가 슬럼화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과 같다. 제재 없는 일탈행위는 속성상 전염력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막말 남용에 대해 적극적인 예방과 치료가 필요한 이유다.
막말을 쉽게 하는 대표적 원인은 성장기 때 훈육과 교육의 부재에 있다. 남의 입장을 생각할 능력이 없거나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인격장애자 역시 막말을 거리낌없이 한다. 따라서 막말을 예방하려면 자녀와 대화할 때는 물론 무심코라도 아이 앞에서 막말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또 아무리 철없는 어린이가 재미 삼아 욕설이나 막말을 하더라도 매순간 단호하게 반복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교정해 줘야 한다.
그렇다면 막말 치료는 어떻게 할까. 이는 막말에 대한 '감작화(減作化:sensitization)'를 통해 가능하다. 즉 막말로 인해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 일이 반복되면 차츰 막말에 민감해지면서 자제하게 되는 것이다. 인격장애자의 막말 역시 자신의 문제성 인격 때문에 나오는 막말이 자신에게 어떤 피해를 초래하는지를 환자 본인이 인식하게 하는 정신치료나 인지행동치료를 반복함으로써 호전될 수 있다.
황세희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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