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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내용 바꾸면 3 ~ 10%P 왔다갔다

설문내용 바꾸면 3 ~ 10%P 왔다갔다

여론조사의 함정 ? … 시비 끊이지 않는 이유는

 
 

정치권은 요즘 여론조사 전성시대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가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 단일화를 이룬 이래 여론조사는 단순한 현실의 반영을 뛰어넘어 현실을 움직이는 주체가 됐다.

최근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그토록 싸운 것도 경선에 여론조사를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레이스를 포기한 것이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도 여론조사 지지율과 관련이 있다.

선관위가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확인하겠다며 16개 여론조사 기관에 조사 자료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도 여론조사의 파괴력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중앙선관위 조원봉 조사총괄과장은 16일 "선거법엔 선거 후보의 여론조사를 한 기관이 조사설계서.표본추출.질문지 등 관련 자료를 선거 후 6개월간 보존토록 규정하고 있다"며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조사의 신뢰성.객관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학계에선 우리 여론조사가 선진국과 비교할 때 다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고려대 허명회(통계학) 교수는 "선진국에선 선정된 샘플에게 두세 차례씩 전화를 걸어 꼭 통화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한 번 전화를 걸어 안 받으면 샘플을 바꿔버린다"고 말했다. 낮에 집에 있는 사람들 위주로 여론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또 미국.일본에선 전화조사 응답률이 40~50%를 넘지만 우리나라는 응답률이 대개 10~20%대에 머무는 점도 논란거리다. 전화 응답을 거절하는 80~90%의 여론은 어떻게 반영하느냐 하는 반론이 나온다.

◆ "설문 바꾸면 지지율 격차도 달라진다"=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제기하는 쪽은 박근혜 전 대표 쪽이다. 박근혜 캠프의 신동철 공보특보는 "'누가 대선 후보로 적합하냐'고 묻는 선호형 설문보다 '오늘이 투표일이라면 누구를 찍겠느냐'고 묻는 지지형 설문이 더 정확한 여론을 반영한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선호형 질문을 채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는 지지층 충성도가 높아 지지형 설문에 강하다는 게 캠프의 견해다. 설문이 선호형이냐 지지형이냐에 따라 이명박-박근혜의 지지율 격차가 3~4%포인트에서 많게는 10%포인트까지 오락가락한다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경선 룰 확정 과정에서 설문 유형을 지지형으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작정이다.

그러나 이 전 시장 측 생각은 다르다. 공보특보인 진수희 의원은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물어야 할 얘기"라며 "대선이 몇 달이나 남았는데 투표 얘기를 꺼내는 것은 현실성 없는 주장이고, 오히려 무응답층만 크게 늘려 부정확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반박했다.

◆ 여론조사 비판은 2위의 단골메뉴=2002년 12월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진영에선 '숨겨진 1인치'가 화두였다. 여론조사에서 계속 노무현 후보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왔지만 이 후보 측은 "야당 후보 지지층은 원래 여론조사에 잘 응하지 않는다"며 "숨어 있는 이 후보 지지층이 투표장에 나가면 결과가 뒤집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숨겨진 1인치'는 없었다.

지금도 여론조사 2위인 박 전 대표 측에선 "특정 조사기관이 이 전 시장 캠프와 연계돼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펴며 여론조사 결과에 강한 불신감을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갤럽 박무익 소장은 "우리 정치권은 무조건 여론조사 1위를 해야 유리하다고 믿기 때문에 2위는 항상 여론조사에 불만을 쏟아낸다"며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해야 선거에도 유리하다는 '밴드왜건' 효과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미국에서 지난 13번의 대선 중 12번은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1위와 2위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졌다"며 "차라리 처음엔 2위를 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하.강기헌 기자

◆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유권자들이 승리할 가능성이 큰 후보를 더욱 더 지지하게 되는 경향.

◆ 언더독(Under Dog) 효과=약세 후보가 유권자들의 동정을 받아 지지도가 올라가는 경향.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밴드왜건과 언더독 효과가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여론조사 발표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적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