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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자유공간

`청년 무업자` 80만 빈둥빈둥

`청년 무업자` 80만 빈둥빈둥

`진학도 … 취직도 … 직업교육도 싫다`
실업률 통계에도 안 잡혀
 

서울에 사는 박수영(23.가명)씨는 고교 졸업 뒤 4년간 '그냥 놀고' 있다.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 2개월, 컴퓨터학원 수강 5개월이 경력의 전부다. 집에서 음악을 듣거나 인터넷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고교 졸업 뒤 아르바이트 자리를 좀 알아봤지만 연락이 없기에 집에 머물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와 같은 '청년 무업자(無業者)'가 늘고 있다. 청년 무업자란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15~34세의 젊은층을 가리킨다. 1990년대 후반 영국에서 나타난 니트족(族)(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연령층(16~18세)을 확대하면서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청년 무업자의 수를 2004년 현재 80만6000명으로 추정했다. 95년의 26만9000명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일본에서는 2004년 "청년 무업자가 2010년엔 10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대인 기피, 구직 실패 등이 원인=청년 무업자는 청년 실업자와 달리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구체적인 실태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구직을 포기하고 무업상태에 놓인 이유는 다양하다.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어 사회활동을 기피하는 '고립형'은 일종의 자발적 무업자에 해당한다. 김모(33)씨는 취직돼도 몇 달 만에 그만두기를 반복해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한 뒤로 대인 기피 성향을 보였다. "나이 때문에 이제 마땅히 갈 곳도 없다"는 그는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 가족과의 대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직업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주춤형'도 있다. 박수영씨는 "실업계가 아닌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고 직업교육도 받지 못한 점"을 자신이 무업상태에 빠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적성과 상관없이 성적에 맞춰 진학하다 보니 진로에 대한 준비 없이 사회에 나온 것이다.

구직 실패가 반복되면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구직을 포기하는 '상실형'은 비(非)자발적 실업자와 유사하다. 이모(34)씨는 자격증이 있어도 고졸 학력이라는 점 때문에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했다.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포자기한 그는 무업자 생활이 길어지면서 결혼도 포기했다.

◆경제 성장 떨어뜨리는 사회문제=청년 무업자는 소비와 생산 등 경제 전반에 기여하는 부분이 0(零)에 가깝다. 게다가 부모에게까지 경제적 부담을 안긴다. 가뜩이나 일할 인력이 부족한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인력자원이 더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청년 무업자의 증가가 2003년부터 2015년 사이의 경제성장률을 0.11% 정도 떨어뜨릴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민간단체인 희망청의 주덕한 센터장은 "무업자 개인도 우울증 등에 시달릴 뿐 아니라 가족까지 불화를 겪는 등 사회적 비용이 크다"며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보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일 "일 안 하면 밥도 먹지 말라"는 말에 격분해 아버지를 흉기로 위협한 30대 남성 무업자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앞서 지난달 27일엔 취업에 실패한 뒤 구직을 포기하고 7년 동안 집안에 머물러온 20대 여성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남재량 박사는 "청년 무업 현상을 젊은이들의 '사치병'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상담.심리치료로 의지 길러줘야=구직의욕이 없는 무업자에게 단순히 직업훈련을 시키고 직장을 구해주는 것만으로는 탈출이 어렵다.

우리보다 먼저 청년 무업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일본에서는 이들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전국적으로 10여 개의 합숙시설을 운영 중이다. 관련 예산도 올해 21조6000억 엔을 편성했다. 반면 우리는 청년 무업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은 거의 없는 상태다. 서울 동남정신과의원 여인중 원장은 "상담.심리치료.진로탐색을 함께 제공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민간 차원에서 운영하기 시작하는 단계"라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