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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골프 이것저것

윤은기의 휴먼골프 <1> 소설가 김주영

윤은기의 휴먼골프 <1> 소설가 김주영
63세 입문 … "마음이 깨끗해집디다"
중앙일보는 10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경영학 박사 윤은기씨의 골프칼럼 '윤은기의 휴먼 골프'를 게재합니다. '시(時)테크' 강의로 잘 알려진 윤씨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이며 골프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골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 철학 이야기, 골프 이야기, 경영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골프의 장점 중 하나는 나이가 들어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람도 함께 어울릴 수 있으니 사실은 이게 진짜 매력이다. 소설가 김주영 선생은 1939년생이니까 올해 67세다. 소설가로는 71년에 데뷔했으나 골프 구력은 이제 겨우 4년이다. 회갑이 넘어 골프를 시작한 것이다. 남들은 골프 인생에서 전성기를 지나 하강 곡선을 그릴 시점인데 이분은 지금 한창 골프의 매력에 빠져 있다.

5일 김 선생과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했다. 딱 1년 전에 처음 라운드하고 이번이 두 번째다. 나는 어렸을 적 꿈이 소설가였고, 지금도 소설가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작가 지망생이다. 그래서 이 유명한 소설가와 함께 라운드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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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은 키가 1m80㎝가 넘는 우람한 체격인 데다 얼굴은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퍼드를 닮았다. 파안대소할 때마다 굵게 패는 주름이 진짜 매력적이다.

자, 이쯤 소개했으면 골프 실력이 궁금해질 것이다. 우람한 체격과 달리 드라이버 비거리는 220야드 정도. 조금 세게 휘두르면 오비(OB)도 나고 산비탈로도 간다. 장애물이 있다고 피해서 치지도 않고 퍼팅할 때 긴장하지도 않는다. 잘 맞으면 크게 웃고, 실수하면 더 크게 웃는다. 카트도 타지 않고 매 홀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캐디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저분은 꼭 큰 코끼리가 움직이는 것 같네요." "샷 하는 모습도 코끼리 같아요."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사자.호랑이 같은 날카롭고 매서운 기가 느껴지지 않고, 코끼리처럼 크면서도 따뜻한 느낌이다. 유명작가의 티도 내지 않고, 말도 별로 없다. 그저 남들보다 두세 배 큰 소리로 산이 울릴 정도로 웃는 게 특징이다. 김 선생은 그날 파 5개, 트리플 보기 두 개를 포함해 94타를 쳤다.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재미가 있어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으니까!" "자연 속에서 땅 밟고 걸어다닐 수 있으니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니까."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나는 "평생 소원이 소설가 되는 건데 나이 든 문하생도 받아 줄 수 있느냐"고 정중하게 물어봤다.

"나이가 무슨 상관 있어요. 나는 육십이 넘어 골프를 시작했는데."

점수와 관계없이 좋은 사람들과 산속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그의 골프 철학이 마음에 다가왔다.

오늘의 원 포인트 레슨. '골프는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사람들과 함께하라'.

윤은기 박사 인터뷰
"지연·학연보다 '골연'이 더 좋아"


윤은기씨가 '골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 연재를 시작하며

"18홀 동안 라운드를 해보면 동반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골프는 인간 평가 게임이라고 부르지요. 동시에 골프는 모의 경영 매니지먼트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골프에는 온갖 경영 기법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윤은기(55)씨의 골프 예찬론이다.

"지연과 혈연.학연을 따져 똘똘 뭉치는 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지요. 저는 차라리 '골연'을 맺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골연'이란 '골프로 맺은 아름다운 인연'을 말하지요."

윤씨는 "골프에는 경영 기법이 녹아 있고, 골프를 즐기다 보면 인생의 평범한 이치를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된다"고 말한다. 규칙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은 준법 경영, 동반자를 속이면 안 되는 것은 윤리 경영, 치열한 머리 싸움이 필요한 것은 창조 경영, 골프에 미쳐야 하는 것은 혁신 경영과 일맥상통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많이 대중화되기는 했지만 골프는 아직도 상류층들이 즐기는 스포츠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씨는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모임과 관련, "총리가 동반자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고려하지 않고 골프를 즐긴 것은 유감"이라며 "그러나 이번 파동과 관련해 골프 자체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번 칼럼이 그릇된 골프 매너를 바로잡고, 성숙한 골프 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제원 기자 <newspoet@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