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차에 손 얹은 7인 … 김정은 체제 자리 잡혔다 신호
김정은 맨손으로 30분간 사이드미러 잡고 애도
김정일 위원장의 영결식이 열린 28일 오후 평양 시내 한 거리에서 시민들이 김 위원장의 운구차량을
둘러싸고 진행을 막고 있다. 북한 당국은 곳곳에 군과 경찰을 배치해 주민들의 도로 진입을 통제했지
만 일부 구간에서 주민들이 차단선을 넘어 도로로 나왔다. [교도통신=연합뉴스]
28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결식에선 예상 밖의 장면이 비쳐졌다.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오후 2시 김정일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은(27)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7명의 당 정·군 핵심 인사와 함께 영구차를 호위하며 영결식장에 들어서는 모습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검은색 코트 차림의 김정은은 영구차 오른편 앞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거수경례로 예를 표했다. 그 뒤에는 장성택(65) 국방위 부위원장, 김기남(82) 당 비서, 최태복(81) 당 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영구차 건너편에는 이영호(69)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겸 군 총참모장, 김영춘(75) 인민무력부장, 김정각(70)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그리고 우동측(69)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으로 추정되는 군부 인물이 섰다. 영하의 추운 날씨. 김정은은 영결식장인 금수산기념궁전을 나오고 들어가는 30여 분간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운구차량의 사이드미러를 시종 잡고 있었고, 나머지 7명은 가끔씩 차에 손을 얹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17년 전 김일성 주석의 영결식 땐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김정은과 7인’의 영구차 호위는 고도로 조율된 이벤트일 것으로 분석한다. 김정은 시대의 국정을 운영할 실질적인 권력서열을 명확히 보여줌으로써 김정은 체제가 ‘무질서의 시대’가 아니라 ‘질서의 시대’임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란 얘기다. 서강대 김영수(정치학) 교수는 “당과 군의 핵심 인사 7명이 김정은과 함께 시신을 운구하는 모습을 통해 김정은 체제의 권력 랭킹이 존재하고, 김정은이 엘리트들의 충성과 지지를 받는 안정된 체제를 갖췄음을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를 향해 알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넘버 2가 누구냐’ 하는 추측과 갈등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허리 굽힌 군인들 김정일 위원장의 영결식이 열린 28일 눈이 쌓인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앞 광장
에서 군인들이 운구차가 들어오자 일제히 허리를 굽히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로이터=뉴시스]
이날 영구차 호위 장면에서 드러난 북한 신권력의 핵심은 단연 장성택과 이영호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향후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실질적인 2인자 장성택과 군부 핵심 이영호의 ‘투 톱’ 체제로 갈 것”이라며 “7명을 선정하는 데는 김정은과 장성택의 의중이 주로 반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전·선동의 귀재로 불리는 김기남은 김정은 후계체제 확립의 공신이다. 김정은 우상화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영호는 ‘선군정치’를 이끌 군부 핵심이다. 김정각은 국장이 공석인 총정치국의 수장으로 인민군 내 정치사상 업무를 총괄하면서 군 인사도 관장한다. 또 장성택과도 가깝다. 김 연구원은 “7인 중 로열 패밀리로 김정은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장성택의 파워가 가장 크다”며 “군부를 견제하며 김정은 체제의 안정과 동시에 자신의 권력 유지에도 공을 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김정은과 7인’의 모습을 생중계로 보여준 것은 ‘충성 서약식’의 의미도 커 보인다. 영구차에 손을 얹고 걸어 가는 모습도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충성맹세란 분석이 많다. 김영수 교수는 “서열이 공개된 이상 랭킹에 들어간 사람은 들어간 사람대로, 빠진 사람은 빠진 사람대로 충성을 다짐할 수밖에 없다”며 “신비주의를 벗고 ‘김정은과 그들’의 서열을 공개한 것은 김정은 체제가 절대권력이었던 김정일 체제에 비해 허약하단 증거”라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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