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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기타정보

피서객 위협하는 ‘빠삐용 파도’ 이안류(離岸流)

피서객 위협하는 ‘빠삐용 파도’ 이안류(離岸流)

19일에도 해운대서 관측
얕은 바다 갑자기 초속 2~3m 물살, 왜

 

매년 여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수십 명의 피서객이 한꺼번에 파도에 휩쓸리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바닷물이 빠르게 흘러나가는 이안류(離岸流·rip current) 탓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아직 이안류로 인한 사망자가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매년 4000~6000명이 이안류 때문에 익사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올여름 피서철을 맞아 기상청과 부산시, 국립해양조사원 등이 사고 예방에 부심하고 있다. 본격적인 물놀이 철을 맞아 푸른 바닷속의 공포, 이안류의 정체를 들여다본다.


‘악마의 섬’은 사방이 절벽과 파도로 막혀 있었다. 몇 차례 탈옥을 시도한 끝에 이 섬에 갇힌 빠삐용(스티브 매퀸 분)은 바위에 거세게 부딪치는 무시무시한 파도를 보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파도의 주기를 알아냈다. 섬 쪽으로 세차게 몰아치던 파도가 일정한 주기로 한 번씩 바다 쪽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빠삐용은 야자열매 포대를 안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결국 그는 탈출에 성공한다. 영화 ‘빠삐용’의 최고 명장면인 이 대목에서 시나리오의 극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파도가 바로 이안류다.

  현실에서 이안류는 해피 엔딩보다는 비극을 낳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5년 7월 28일 일본 미에(三重)현 쓰시(津市)의 나카가와라 해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쯤 수영 수업을 받기 위해 얕은 바다에 서 있던 하시기타(橋北)중학교 여학생 200여 명 중 100명 정도가 갑자기 파도에 휩쓸려 바다 가운데로 밀려 들어갔다.

 

교사와 수영부원들이 구조에 나섰지만 36명이 숨졌다. 이 해변은 넓고 경사가 완만한 모래 해변이었지만 육지에서 작은 강이 들어오면서 바다 밑에 고랑이 생겼고, 이 고랑을 통해 바닷물이 바깥으로 빠져나간 게 원인이었다.

이안류(화살표)의 모습. 해변(오른쪽 위)의

일정한 지점에서 빠른 속도로 바닷물이 깊은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안류는 해안 가까이에서 파도가 부서지면서 바닷물이 특정 지점으로 모여들고, 좁은 통로를 통해 다시 바다로 빠져나갈 때 생긴다. 폭은 10~40m, 길이는 500m 정도이지만, 물살은 초속 2~3m로 빠르다. 한번 휩쓸리면 수영을 잘하는 사람도 빠져나오기 어렵다.

 기상청 서장원 해양기상과장은 “이안류는 지형적 요인, 파도의 특성, 기상학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안류가 발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닷물이 해안으로 밀려와 쌓이기 때문이다. 깊은 바다에서는 파도가 에너지만 전달하고, 바닷물 자체는 제자리에서 아래위로 요동치기만 한다. 반면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파도가 깨지면서 바닷물 자체가 해안으로 밀려온다. 밀려온 바닷물은 다시 바다로 빠져나갈 곳을 찾으면서 해안을 따라 이동한다. 쌓인 바닷물은 육지를 향해 들어오는 파도가 약한 지점, 즉 바다 아래 골이 생긴 곳 등에서 깊은 바다 쪽으로 빠져나간다. 강둑이 무너진 곳에서 물이 넘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파도가 있는 모든 해변에서는 이안류가 발생한다. 해운대뿐만 아니라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에서도 목격된 적이 있다.

 성균관대 사회시스템공학과 이정열 교수는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7~8월 남쪽으로부터 파도가 똑바로 밀려들기 때문에 이안류가 자주 관찰된다”고 말했다. 특히 해변에서 500~1000m 떨어진 곳에 암초가 있어 파도를 한곳으로 집중시키기도 하고 분산시키기도 하는 등 파도가 헝클어지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안류는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사이언스데일리가 미국 스토니브룩대학 해양대기과학과 헨리 보쿠니에비츠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안류의 지속 시간은 대부분 2~3분 미만이었다. 연구팀이 이스트햄프턴 비치에서 500시간 동안 20초 간격으로 사진을 촬영해 분석한 결과다.

 미국 ABC방송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해안구조대에 구조되는 수영객의 80% 정도가 이안류로 인해 위험에 빠졌고, 지난해 72명 등 매년 100명 정도가 이안류 때문에 익사하고 있다. 희생자의 3분의 2는 구조대가 없는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다 당했다. 오대호(Great Lakes) 같은 큰 호수에서도 이안류로 인한 익사자가 발생하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올여름부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이안류 예보를 시작했다. 파도 높이와 방향, 주기, 바람의 방향과 세기 등을 바탕으로 3시간마다 이안류 발생 가능성을 다섯 단계(매우 안전~매우 위험)로 나눠 예보한다. 19일에도 기상청은 이날 내내 해운대에서 초속 1m 이상의 강한 이안류가 형성된다며 ‘위험’ 단계의 예보를 내놓았고 실제로 이안류가 관측됐다.

 서장원 과장은 “이안류에 휩쓸리더라도 수심이 깊지 않기 때문에 당황하지 말고, 물 흐름의 좌우 방향으로 빠져나오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89~2008년 이안류로 364명이 숨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해양대기국(NOAA)과 함께 지난달 ‘이안류 주의 주간’을 정해 시민들에게 이안류의 위험성을 알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2월 플로리다에서 처음으로 이안류 국제심포지엄을 열어 관련 피해 상황과 예보 기술 등 정보를 교환했다. 제2회 심포지엄은 내년 10월 말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