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롭게/자유공간

북한에 감귤 줬더니 … 김정일이 선물로 썼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대북 운송비 지원 거절한 까닭은

 

북한 어린이에게 비타민C를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지원해온 제주산 감귤의 상당량이 노동당 간부와 고위층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물로 전용(轉用)된 것이 우리 관계당국에 포착됐다. 당국은 또 대북지원 쌀과 의약품·분유 등이 군사용으로 전용되거나 일부 당·군 간부에 의해 장마당으로 흘러나간 사실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 소식통은 5일 “감귤의 경우 북한 고위층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대북지원 품목”이라며 “지원이 본격화한 2000년대 초반부터 제주산 감귤이 당·정·군 고위 간부에 대한 김정일의 충성 유도용 물품으로 상당량 공급된 사실이 고위 탈북자와 대북 첩보망을 통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런 사실은 현 정부 들어 청와대와 정부 대북·안보 부처에도 통보됐다”며 “제주 출신인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제주특별자치도 측의 대북 감귤지원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지원 요청을 거부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9년 1월 시작된 제주특별자치도의 대북지원은 2009년 11월까지 감귤 4만8328t, 당근 1만8100t 등 모두 6만6428t으로 230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으로 운송비 등을 지원했으나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2월 20억원의 운송비를 지원하지 않는 등 문제를 제기해왔다. 대북소식통은 “대북지원 당근의 경우도 고위 간부층에게 건강주스 등의 용도로 공급된 사례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부터 대규모 지원이 시작된 쌀과 의약품은 군사 전용이 두드러진다. 정부의 한 기관이 정리한 ‘대북지원 물품 전용 관련 탈북자 진술’ 자료에 따르면 북한군 모 사단의 군수책임자로 일하다 2009년 12월 한국에 온 임모씨는 “인민무력부 군수담당 부서에서 군단·사단 군수부에 (쌀을) 배정하면 (해당) 부대가 원산·남포항에서 하선되는 남한 쌀포대를 직접 수송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과 ‘붉은십자(적십자)’ 표시가 있는 쌀을 북한산 마대로 재포장한 뒤 민간차량으로 위장한 군용트럭으로 날랐다”고 밝혔다.

북한군 출신 곽모씨는 “한국이나 유엔이 지원한 의약품은 군 병원에 우선공급하는데 병원장 등은 이를 불법 판매해 병원 운영비에 충당한다”고 전했다. 또 김모씨는 “시·군 당위원회 간부들이 ‘이번에 지원받은 남조선 제품’이라며 장사꾼에게 판매해 장마당에서 고가에 유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간호사 출신인 서모씨는 “장마당 주민들은 한국산 물품 대부분을 중간 간부가 빼돌려 파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어가 반창고로 가려져 있어도 바코드 등을 통해 한국제품을 알아채고 있다”고 강조했다.

 탈북자 증언 가운데는 “유엔의 식량 분배 모니터링 시 쌀·기름 등 하루분 식량을 나눠주었다가 유엔 관리가 돌아가면 회수했다”(운전수 박모씨)거나 “유엔 조사단 방문 시 유아들은 굶어서 늘어진 시늉을 하고, 학생들은 배고파하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유도했다”(노동자 신모씨)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북 소식통은 “정부가 취약 계층에 대한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제외하고 쌀 등의 대북지원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이런 전용사례 때문”이라며 “지원물품이 당 간부가 아니라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한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