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보따리를….”
지난 13일 경운기를 몰고 경북 의성읍에서 안동시로 가던 김모(67)씨는 뒤에서 덮친 승합차를 피하지 못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도 김씨는 출동한 경찰에 애원했다. “보따리를 찾아 주세요.”
경찰은 농로 쪽에서 발견한 보따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벼 이삭 속에 숨겨 색이 바랜 1만원짜리 구권 지폐가 쏟아져 나와서다. 총 2360만5000원. 그가 23년간 박모(71)씨 집에서 품을 팔아 모은 돈이다.
가난해 살 길이 막막했던 김씨는 88년 고향 안동을 떠나 의성의 박씨 집으로 가 마늘·고추 농사를 짓는 일꾼이 됐다. 먹고 자며 품삯으로 1년에 360만원을 받기로 했다. 이들은 최저임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저 주는 대로 받기로 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될 수 있는데도 김씨도 박씨도 이런 제도를 몰랐다. 읍사무소도 주민을 챙기지 못했다.
김씨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았다. 그런데도 형편이 어려운 형수를 도왔다. 형이 일찍 세상을 뜨자 그는 형의 제사 때마다 형수에게 돈을 부쳤다. 박씨 집에 온 지 5년 만에 김씨는 한 여성을 소개받아 결혼했지만 계속 박씨 집에 살았다. 불행은 곧바로 닥쳤다. 또 경운기 사고였다. 부인을 경운기에 태우고 가다 교통사고가 났다. 아내가 세상을 떴다.
문제는 2006년에 생겼다. 누군가가 노인학대예방센터에 김씨 사정을 신고했다. 조사가 시작됐다. 김씨는 농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쉴 줄 모르는 김씨는 사흘 만에 다시 박씨 집으로 돌아와 일을 자청했다.
그런데 올 들어 다시 노인학대 신고가 들어갔다. 의성읍은 김씨에게 요양원에 들어가라고 권했다. 최저생계비와 기초노령연금 등 50여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씨는 “요양원에 가느니 안동에 가서 일을 찾겠다”며 고향으로 가다가 변을 당했다. 노동은 그에게 자유를 주는 샘물이었나 보다. 김씨는 지금 중태다. 경찰 관계자는 “사회가 그에게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이런 불행을 겪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동=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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