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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조코/세상은 이렇게

아줌마의 힘 … 더 똑똑해진 아파트

아줌마의 힘 … 더 똑똑해진 아파트

360도 돌아가는 방범로봇
남녀용 높이 다른 세면대 …
아이디어 반영 단지 잇따라

 

내년 11월 입주하는 경기도 남양주시 동부센트레빌 아파트. 이 단지에는 막대사탕처럼 생긴 로봇이 설치된다. 머리 부분이 24시간 360도 회전하며 반경 50m 주변을 감시할 방범로봇(모델명 센트리)이다. 센트리에는 적외선 카메라가 장착돼 밤에도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동부건설 김경철 상무는 “단지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부 자문단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방범용 로봇을 개발했다”며 “지난해 분양 당시 계약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앞으로 분양하는 모든 단지에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주 고객인 주부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건설업체들이 3~4년 전부터 주부들의 요구와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인 결과다. 주택 소비자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그래서 업체들은 주부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다

 

 

◆평면도 바꾸는 ‘주부들의 힘’=업체들이 주부들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아파트에 적극 반영하는 프로슈머(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소비자) 마케팅을 도입한 건 주택시장이 급변한 때문이다. 3~4년 전부터 지방을 중심으로 아파트시장이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한 것.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소비자 입맛에 맞는 상품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업체들은 전업주부 10여 명 정도를 선발해 주부 자문단(프로슈머)을 운영했다. 자문단은 주로 견본주택이나 입주 단지를 찾아 개선·보완할 점이나 아이디어를 냈다. 업체들이 이를 상품화한 뒤 실제 아파트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GS건설 강철현 상품개발팀장은 “아이디어가 적용되기까지 2~3년 정도 걸리는데 요즘 들어 상품화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주부들의 손이 자주 가는 곳에 아이디어가 많다”고 말했다.
 

 

화장실이 대표적인 공간. 2009년 입주하는 인천 영종도 영종자이 욕실에는 남성용 소변기가 별도로 설치된다. 주부들의 변기 청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최근 입주한 서울 광진구 광장자이 303㎡ 욕실에는 크기와 높낮이가 다른 세면대 두 개가 있다. 남성용과 여성용이다.

현관과 아이들 놀이터도 주부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공간이다. 내년에 입주하는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e-편한세상에는 신발을 신발장에 넣지 않고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독특한 신발장이 설치된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있는 충남 아산시 모종동 e-편한세상 단지에는 주부들이 의견을 내 만든 거북선·대형 목조 함선 모양의 놀이터가 있다.

평면이 바뀌기도 한다. 광주시 서구 상무자이 178㎡에는 거실 옆에 가족실로 불리는 특이한 공간이 하나 있다. 방처럼 돼 있지만 한쪽 면이 트여 있고 인터넷 단자를 갖췄다. 컴퓨터방 등으로 활용할 만한 공간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주부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영역 커지는 프로슈머=소비자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이연수 대림산업 고객만족팀장은 “신발장·놀이터 등은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고객들의 일상생활에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며 “기대 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철 상무는 “한번쯤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개선되면서 상품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아 자문단의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부건설은 자문단을 올해부터 30대와 40대 두 그룹으로 나눠 운영한다. 고객을 세분화해 각 연령대에서 원하는 상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자문단 구성원이 다양화·전문화되기도 한다. 포스코건설은 지난해 하반기 출범시킨 2기 자문단(더샤피스트)에 싱가포르·미국 등지에서 살았던 주부들을 특별 선발했다. 외국 주거시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2기 자문단을 모집 중인 현대건설은 남자 주부도 뽑을 계획이다. 이 회사 김혜진 CV팀 과장은 “보다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성별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림산업은 건축가나 색채 전문가 출신 주부를 우선 선발한다. 금호건설도 디자인 업계 출신의 주부를 우대한다.

황정일·임정옥 기자

◆프로슈머(Prosumer)=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친 용어로, 기업이 신상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 운영하는 일종의 소비자 자문·체험단. 화장품 등 소비재 업체에서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