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롭게/자유공간

`가짜 박사` 신정아씨 맨해튼서 행방 묘연

`가짜 박사` 신정아씨 맨해튼서 행방 묘연

`소나기 피해 한 달간 머물겠다`
`논문 표절 했을뿐인데 … 언론에 할 말 없다`
동국대, 캔자스대에 신씨 학위 조회 안 해

 

학위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난 동국대 교수 신정아(35.여)씨가 뉴욕 JFK공항에 16일 낮 12시45분(현지시간) 도착했다. 청바지와 회색 티셔츠 차림이었다. 흰색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을 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입국장에서 나왔다.



16일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한 신정아씨가 오후 1시쯤 택시를 타고 황급히 떠나고 있다.[뉴욕=남정호 특파원]
신씨를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자 신씨는 "논문 표절을 (했을 뿐인데) 고졸로 (깎아) 내린 언론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택시를 잡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미술계 인사에 따르면 신씨는 그동안 일 년에 2~3차례씩 뉴욕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뉴욕의 현지 작가나 사업가들과 교류를 맺어왔다는 것이다. 한 인사는 "신씨가 뉴욕 맨해튼 또는 뉴저지의 지인 숙소에 묵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혼자 택시를 타고 뉴욕 JFK공항을 빠져나온 뒤 맨해튼의 한 아파트 단지에 내리려 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따라붙자 곧장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신씨가 뉴욕에 자주 왔지만 광범위한 교제활동은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뉴욕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웬만한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뉴욕에 오면 문화원을 찾아오는 것이 보통인데 신씨는 전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욕의 문화행사장에서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뉴욕에 왔을 때 예일대가 있는 뉴헤븐에 자주 간 것으로 전해졌다. 신씨가 학위증명서라고 제출한 문서에 적힌 전화번호는 확인 결과 예일대 인문학부 사무실의 것이었다.

신씨는 출국에 앞서 한 주변 인사에게 "소나기는 피하고 천천히 대응하겠다"며 "한 달 정도 혼자 있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 신씨 학위 조회 의문=동국대의 신씨에 대한 학위 조회 과정에서도 새로운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신씨가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주장한 미국 캔자스대에 학위 조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드 코언 미국 캔자스대 홍보실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 우리 대학 학적과에 동국대로부터 학력 조회 요청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동국대는 "2005년 9월 초순 예일대와 캔자스대에 신씨의 학력 조회 요청 공문을 등기 항공우편으로 보냈다"고 주장해 왔다. 당시 동국대는 "예일대만 팩스로 '신씨가 예일대에서 학위를 받은 게 맞다"는 회신을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동국대가 갖고 있다는 등기항공 우편 영수증엔 등기번호와 수신 국가(미국)만 나와 있을 뿐 실제 수신처의 주소는 명기돼 있지 않았다. 실제로 동국대가 우편물을 예일대와 캔자스대에 보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는 얘기다. 동국대는 당시 공문이 제대로 도착했는지 등기번호로 조회해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동국대 관계자는 "우리도 다방면으로 알아봤는데 지금으로선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시인했다.

이상일 동국대 학사지원본부장은 "신씨의 박사학위가 허위임을 공식 증명하는 예일대의 공문이 종이문서 형태로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신정아씨 사건을 수사 의뢰할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며 "우리는 가급적 학교 자체 조사로 마무리를 짓자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성곡미술관 사직=신씨는 그동안 겸직해 온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직을 출국 직전 그만뒀다. 성곡미술관 관계자는 17일 "신씨가 15일자로 사직서를 제출해 당일 의원면직 처리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신씨는 14일 박문순 관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거취 문제는 미술관 이사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씨는 면담에서 '현재 언론에서 제기하는 학위 의혹은 전부 근거가 없다. 곧바로 출국해 예일대 및 변호사와 상의해 나를 음해한 사람들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박 관장에게 말했다"고 덧붙였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서울=강기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