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안컵] 속상하지만, 실력만이 자존심
[동아시안컵] 속상하지만, 실력만이 자존심
벼르던 일본에 1대 2 패배
동아시안컵, 2무1패로 3위
일본에 최근 4경기 2무2패
홍명보 발탁 윤일록 첫 골 위안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2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1-2로 패한 뒤 허탈해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적진에서 승
리한 일본 선수들은 서로 껴안으며 동아시안컵 우승을 자축했다. [김성룡 기자]
일본에 졌다. 경기도, 응원도 졌다.
2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13년 만의 축구 A매치(대표팀 간 경기)가 이곳에서 다시 열렸다. 잠실에서 마지막 열렸던 A매치는 2000년 5월 유고전(0-0)이었다. 그 바로 전에 열린 A매치는 2000년 4월 열린 한·일전이다. 하석주의 왼발슛으로 1-0으로 이겼다. 13년 만에 잠실에서 다시 만난 결과는 1-2 패배였다. 홍명보호는 2무1패로 동아시안컵을 3위로 마쳤다. 호주·중국과 두 경기 연속 0-0 무승부에 이은 한·일전 패배.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은 더 컸다.
일본은 2승1무로 동아시안컵 챔피언이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축구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국은 1승2무로 2위를 차지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중국은 같은 날 호주에 4-3으로 승리했다.
◆‘홍명보의 황태자’ 윤일록=일본전의 유일한 수확은 마침내 홍 감독 부임 후 한국의 첫 골이 터졌다는 것 정도다. 스물한 살의 겁 없는 신예 윤일록(서울)이 첫 골의 주인공이다. 전반 33분 아크 왼쪽에서 오른발로 감아 찬 공이 오른쪽 골대 구석에 꽂혔다. 윤일록은 호주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번 동아시안컵에서는 골키퍼 정성룡(28·수원)을 빼고 3경기 연속 선발 출전한 유일한 선수다. 홍 감독은 그를 신뢰했고, 윤일록은 믿음에 보답했다. 한국은 전반 24분 롱패스 한 방에 수비진이 와르르 무너지며 가키타니 요이치로(23·세레소 오사카)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1-1로 비길 것 같던 후반 종료 직전에도 가키타니의 왼발에 통한의 결승골을 내주며 아쉬움을 삼켰다. 가키타니는 3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응원도 완패=일본 극성팬이 욱일승천기를 3분 넘게 흔들다가 빼앗겨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붉은악마는 경기 전 애국가를 부른 직후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가 그려진 대형 걸개를 펼쳐 한·일전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와 더불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쓴 대형 펼침막을 내걸었다. 축구협회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를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붉은악마는 펼침막을 내린 후 응원을 보이콧했다.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일본 응원단 울트라닛폰과 달리 붉은악마는 깃발도 흔들지 않고, 묵묵히 경기를 관전했다. 간헐적으로 일반 관중이 힘차게 응원했지만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일본 응원단이 잠실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기기 힘들어진 일본=일본과 역대 전적은 76전 40승22무14패. 그러나 2000년대 이후로 범위를 좁히면 4승6무4패로 호각이 된다. 최근 4경기만 보면 2무2패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2011년 8월 삿포로 원정에서 당한 0-3 참패를 설욕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후 일본은 이탈리아 AC 밀란과 유벤투스 등 명문팀을 지도한 알베르토 자케로니(60·이탈리아)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겼다. 반면 한국은 조광래-최강희를 거쳐 벌써 세 번째 감독을 맞이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이 1년도 남지 않았는데 한국은 밑그림을 다시 그리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라이벌한테 져서 기분이 좋지 않다”며 “경기 운영 능력에서 부족한 점이 눈에 띄었다. 두 골 모두 경기 흐름을 읽지 못한 결과”라고 아쉬워했다. 자케로니 감독도 “한국이 꼭 이기겠다는 마음 때문에 균형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오명철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