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퍼트 … 그리고 풍덩 … 박인비 “담은 물 아버지께”
퍼펙트 퍼트 … 그리고 풍덩 … 박인비 “담은 물 아버지께”
나비스코 챔피언십 제패
5년 만의 메이저 우승, 랭킹 2위
박인비(25·가운데)가 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대회 전통에 따라 ‘포피의 연못’으로
뛰어들고 있다. 프로골퍼 출신 약혼자 남기협(32·오른쪽)씨도 함께 세리머니를 했다. [란초 미라지=게티이미지]
“저 선수는 퍼트는 한 번에 다 집어넣나 봐.”
2번 홀 그린. 리제트 살라스(24·미국)를 응원하러 온 갤러리는 박인비(25·스릭슨·사진)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인비는 첫 홀에서 10m가 훨씬 넘는 퍼트를 집어넣었고 2번 홀에서도 5m짜리 퍼트를 30㎝인 것처럼 쉽게 넣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에게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퍼트는 박인비에겐 식은 죽 먹기처럼 편했다.
박인비가 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4라운드 3언더파, 최종 합계 15언더파로 2위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을 4타 차로 제쳤다.
박인비를 위한, 박인비에 의한 경기였고 사실상 아무런 드라마도 없는 독주였다. 첫 홀, 경쟁자인 살라스가 더블보기를 하면서 타수 차는 6으로 늘었고 2번 홀에서 7로 벌어졌다.
박인비는 우승 확정 후 전통에 따라 18번 홀 옆 ‘포피의 연못’으로 점프를 했다. 화려한 세리머니 후 그는 가지고 간 물병에 소중하게 연못 물을 담았다. 이 물은 아버지에게 드리기 위한 것이다.
사연이 있다.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선두에 오르자 박인비의 부모는 한국에서 란초 미라지의 대회장에 오려고 했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까지 끊고도 이들은 공항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인비는 “아버지가 오시면 내가 너무나 우승을 하고 싶을 것 같고, 그러면 부담감 때문에 경기를 망칠지도 몰라 안 오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결국 박인비는 5년 만에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이 고시엔 구장의 흙을 퍼 가듯 소중하게 물을 담았다. 이 물은 롯데 챔피언십이 열릴 하와이에서 아버지에게 샴페인처럼 부어드릴 계획이다.
병에 담긴 물의 양은 그를 위해 아버지가 흘린 눈물과 땀에 비하면 미미하다. 그러나 부모님의 가슴을 적시기엔 충분한 양이 될 것이다. 박인비는 “오늘이 부모님의 25주년 결혼 기념일이라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병에 연못 물을 담는 박인비의 이 세리머니는 앞으로 나비스코 챔피언십의 새로운 전통이 될 가능성이 있다. 대회장에 오지 못한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강한 가족애로 뭉친 한국 선수들이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전통일지도 모른다.
박인비는 이 우승으로 세계 랭킹 2위에 올랐고 “1위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퍼트가 워낙 좋기 때문에 가능성이 충분하다. 스테이시 루이스(28·미국)는 “내가 랭킹 1위를 얼마나 유지할지는 박인비가 공을 얼마나 잘 굴릴지(퍼트를 잘 할지)에 달려 있다”며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란초 미라지=성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