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프스인 에비앙-르뱅에서 열리는 에비앙 마스터스의 전장은 6344야드로 짧은데다 내리막 경사가 많아 실제 전장은 훨씬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페어웨이에 경사지가 많아 장타자들은 함정에 걸리기 쉽고 산악 지형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이 유리하다. 김인경(23·하나금융), 홍란(25·MU스포츠), 안신애(21·비씨카드), 신지애(23·미래에셋) 등 샷 거리가 길지 않지만 정교한 선수들이 3라운드까지 좋은 성적을 냈다. 이들은 100승 기념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미야자토 아이(일본)가 한 발 더 앞서 정상을 정복했다.
우승 확정 후 기뻐하는 미야자토 아이.
김인경은 초반 상승세를 탔지만 2타를 줄이는 데
그쳤다. [에비앙-르뱅 로이터=뉴시스]
다음 차례는 홍란이었다. 챔피언조에서 미야자토와 경기한 홍란은 10번 홀까지 4타를 뒤져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11번 홀에서 10m가 넘는 버디 퍼트를 우겨넣으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미야자토는 이 홀에서 2m 남짓의 버디를 놓쳤다. 기세를 탄 홍란은 12번 홀에서 이글이 될 뻔한 완벽한 어프로치샷으로 버디를 잡아냈다. 미야자토는 이 홀에서 보기를 했다. 타수 차이는 1로 줄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홀에서 홍란은 티샷을 실수했다. 나무를 맞혔고 페어웨이에 나왔지만 그린과는 너무 멀어 보기를 했다. 미야자토는 상대의 실수가 나오자마자 버디를 잡으면서 3타 차로 도망갔다. 홍란은 4연속 보기를 하면서 미끄러졌다.
김인경은 12언더파 공동 3위, 홍란은 11언더파 공동 6위, 안신애는 10언더파 공동 9위, 신지애는 7언더파 공동 17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미야자토는 뒷심이 강하다. 작은 체구지만 당당하게 걷고 위기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샷을 한다. 역전승이 많고 역전패는 거의 당하지 않았다. 그가 승부처에서 강한 이유는 슬로 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린 템포의 스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골프에서 느린 것은 나쁠 것이 없다. 보비 존스는 “누구도 지나치게 스윙을 천천히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스윙은 느릴수록 좋다는 것이다. 미야자토와 브리트니 린시컴(미국)의 스윙을 비교한 유튜브의 동영상이 있다. 미야자토는 스윙이 느린 것으로, 린시컴은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 둘이 동시에 스윙을 시작했는데 미야자토가 테이크백을 겨우 마쳤을 때 린시컴은 백스윙과 다운스윙을 끝내고 공을 때렸다. 스윙이 느린 미야자토가 린시컴보다 성적이 더 좋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 느린 스윙은 위력을 발휘한다. 많은 선수들은 우승 경쟁을 할 때 긴장감 때문에 스윙이 무너져 큰 실수를 하는데 미야자토의 느린 스윙은 위기에서도 안정된 샷을 했다.
미야자토는 에비앙 마스터스와도 인연이 깊다. 일본에서 타이거 우즈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은 후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3년여 지지부진하다가 2009년 이 대회에서 첫 우승을 했다. 이후 그는 확 달라졌다. 줄줄이 우승이 이어졌고 세계 랭킹 1위에도 올랐다. 이 대회에서 3년새 2차례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