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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급 공무원과 모텔 직원 … 법원 잣대는 달랐다

이오스5 2011. 5. 13. 11:21

4급 공무원과 모텔 직원 … 법원 잣대는 달랐다

 

“두 번째 성폭행은 결국 모텔에 처음 데려간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것 아닌가.”

 동료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국민권익위원회 4급 간부 박모(55)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서울동부지법 윤종구 판사가 기각하자 검찰 관계자는 12일 이렇게 반문했다. <본지 5월 12일자 23면> 여성을 먼저 유인해 성폭행한 박씨는 불구속되고 2시간여 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여성을 성폭행한 모텔 종업원 권모(33)씨는 구속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씨와 권씨에겐 각각 강간치상과 준강간 혐의가 적용됐다. 피해 여성은 사건 이후 진단서를 첨부했다. 경찰은 두 사람 중 먼저 범행을 저지른 박씨에게 상해의 책임이 있다고 봤다. 준강간죄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여성을 성폭행한 죄다. 피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많이 취해 사건 당일 의식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심새롬 사회부문 기자


 윤 판사는 박씨의 영장 기각 사유를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썼다. 권씨와 박씨에 대한 판단이 왜 다르냐고 묻자 윤 판사는 공보판사를 통해 “박씨의 경우 정황상 강간치상이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경미한 상해는 강간치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다 합의할 경우 처벌이 불가능해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윤 판사는 “박씨가 자백을 했고, 음주 후 같이 여관에 간 경위 등을 따져볼 때 양형을 고려할 요소가 많다”고도 했다. 하지만 윤 판사의 설명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먼저 피해 여성의 상해를 ‘경미하다’고 판단한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음주 후 같이 여관에 간 경위를 따져 볼 때…”란 부분은 “함께 술을 먹었으니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남성중심적 논리로 비쳐진다.

 윤 판사는 “박씨가 자백을 했다”고 했지만 취재 결과 구속된 권씨가 박씨보다 먼저 범행사실을 털어놨다. 박씨는 수사 초기 “술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범행을 부인하다 뒤늦게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판사는 또 다른 법관이 권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과 관련해 “모텔 종업원은 손님에 대한 보호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성을 방치하고 떠나 또 성폭행 피해를 입게 만든 박씨에겐 보호 책임이 없단 말인가.

무죄추정 및 불구속 수사란 큰 원칙에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그 잣대가 모텔 종업원과 4급 공무원에게 다르게 적용된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 여성이 두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심새롬 사회부문 기자